규제샌드박스 신청 1호 '모인'의 기막힌 창업스토리
# "금융감독원장 상에는 주식회사 모인!". 2016년 9월 21일 서울 강남 코엑스 창업경진대회 시상식. 서일석 모인 대표는 사회자의 발표가 나오자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금융개혁 창업일자리 박람회'를 겸해 열린 이날 경진대회에서 서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해외로 송금하는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7개월간 기술 개발에 매달린 시간을 금상에 해당하는 금감원장 상으로 보상받았다.
# 2년 4개월 뒤인 지난달 17일. 서일석 대표는 정부 과천청사에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업무 시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도착했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규제 샌드박스' 신청 첫날인 이날, 서 대표는 '블록체인 기반 해외송금업'을 규제 샌드박스에 포함시켜줄 것을 신청했다. 온라인 서류 접수는 이미 전날 자정, 신청 사이트가 문을 열자마자 1호로 접수했다.
정부에 규정 묻고 창업, 성공 확신했다
2016년 열린 창업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모인. 우측이 모인의 서일석 대표. [사진 모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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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 규정 만들겠다"는 정부에 사업 출렁
그해 7월 정부는 라이센스 세부 요건을 확정해 발표했다. 영업을 하려면 요건을 맞춘 뒤 사업 허가부터 받아야 했는데 자본금 규정부터가 큰 벽이었다. 송금업을 하려면 10억원, 환전업을 겸하려면 20억원의 자본을 확보해야 했다. 서 대표는 "스타트업 중에 10억~20억원이라는 큰 돈을 쥐고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첫번째 요건인 자본금 마련 단계에서 꿈을 접는 창업인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해외 송금업이 발전한 싱가폴만 해도 같은 사업 모델의 자본금 요건이 1억원"이라고 설명했다. 자본금 마련 만으로도 한국은 싱가폴에 비해 스무배쯤 창업이 어려운 셈이다.
자본금 규정 맞출 스타트업 드물어
어렵게 인력 요건까지 맞추자 이번엔 전산설비 요건이 또 다른 장애물이 됐다. 그간 모인은 아마존웹서비스(AWS)에 자체 개발한 송금 서버를 뒀다. 그러나 국내 규정은 금융 사업자는 클라우드를 서버로 쓸 수 없고, 반드시 물리적 서버를 갖추도록 요구했다. 모인 직원들은 이미 개발한 서버를 물리적 저장 공간에 담을 수 있도록 데이터 구조를 바꾸는 작업을 새로 해야했다.
'모인'의 서일석 대표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R&D캠퍼스에서 창업 과정을 털어놓고 있다. 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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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로 여의도로, 공무원 만나려 교통비만 월 백만원
8개월에 걸쳐 라이센스 요건을 다 갖췄지만 정작 사업 유형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막판에 제외했다. 블록체인 기술에 의구심을 갖는 정부 분위기가 바뀌지 않아 다른 송금 기술들로만 허가를 받았다. 아이디어가 좋다고 정부가 상을 준 기술은 정작 제외된 셈이다.
블록체인 이용 송금, 해외서는 확산 중
블록체인을 통한 송금 방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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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겨우 성공했지만 스타트업엔 '사업 폭'도 규제
'모인'의 서일석 대표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R&D캠퍼스에서 창업 과정을 털어놓고 있다. 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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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으로 신산업 재단하면 어떤 도전도 불가
3년간, 길고도 험한 창업 과정을 거친 서 대표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는 '섶에 누워 쓸개를 핥다'라고 적혀 있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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