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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규제OUT]금감원장 賞까지 받았는데 불법 스타트업 될뻔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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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샌드박스 신청 1호 '모인'의 기막힌 창업스토리


# "금융감독원장 상에는 주식회사 모인!". 2016년 9월 21일 서울 강남 코엑스 창업경진대회 시상식. 서일석 모인 대표는 사회자의 발표가 나오자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금융개혁 창업일자리 박람회'를 겸해 열린 이날 경진대회에서 서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해외로 송금하는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7개월간 기술 개발에 매달린 시간을 금상에 해당하는 금감원장 상으로 보상받았다.

# 2년 4개월 뒤인 지난달 17일. 서일석 대표는 정부 과천청사에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업무 시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도착했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규제 샌드박스' 신청 첫날인 이날, 서 대표는 '블록체인 기반 해외송금업'을 규제 샌드박스에 포함시켜줄 것을 신청했다. 온라인 서류 접수는 이미 전날 자정, 신청 사이트가 문을 열자마자 1호로 접수했다.

정부에 규정 묻고 창업, 성공 확신했다
금감원장 상을 받을 정도로 촉망 받던 비즈니스 아이템은 어쩌다 규제 샌드박스 채택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을까. 2년4개월간 모인은 어떻게 회사를 운영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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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열린 창업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모인. 우측이 모인의 서일석 대표. [사진 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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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R&D 캠퍼스 내 모인 사무실에서 만난 서 대표는 "2017년 1월 안드로이드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때만 해도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벤처캐피털 회사 출신인 그는 핀테크 분야에 유독 규제가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송금업에 관한 규정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정부에 묻고 또 물었다. '진행해도 된다'는 답변을 듣고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고 했다.

"허가 규정 만들겠다"는 정부에 사업 출렁
사업은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아 '정부발(發) 위기'를 맞았다. 그해 중반 암호화폐 광풍이 불자 청와대와 정부 부처에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 나오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돌변했다. 그즈음 정부는 갑자기 ‘해외송금업 면허(라이센스)’ 규정을 새로 만들겠다는 발표를 했다. 라이센스 없는 영업은 불법으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그해 7월 정부는 라이센스 세부 요건을 확정해 발표했다. 영업을 하려면 요건을 맞춘 뒤 사업 허가부터 받아야 했는데 자본금 규정부터가 큰 벽이었다. 송금업을 하려면 10억원, 환전업을 겸하려면 20억원의 자본을 확보해야 했다. 서 대표는 "스타트업 중에 10억~20억원이라는 큰 돈을 쥐고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첫번째 요건인 자본금 마련 단계에서 꿈을 접는 창업인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해외 송금업이 발전한 싱가폴만 해도 같은 사업 모델의 자본금 요건이 1억원"이라고 설명했다. 자본금 마련 만으로도 한국은 싱가폴에 비해 스무배쯤 창업이 어려운 셈이다.

자본금 규정 맞출 스타트업 드물어
투자자를 모아 겨우겨우 자본금 요건을 맞추자 이번엔 인력 규정이라는 장벽에 맞닥뜨렸다. 금융업을 하려면 ‘전산인력 5인 이상 고용' 규정을 맞춰야 했다. 모인처럼 외국환을 다루는 업체는 외국환 전산인력 2명도 별도로 둬야 했다. 서 대표는 "아무리 스타트업이어도 실력있는 분을 모실려면 급여를 너무 낮출 수 없다"며 "전문인력 7명을 구하는 것만 해도 하늘의 별따기인데, 이익이 생길때까지 들어갈 인건비를 미리 마련하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어렵게 인력 요건까지 맞추자 이번엔 전산설비 요건이 또 다른 장애물이 됐다. 그간 모인은 아마존웹서비스(AWS)에 자체 개발한 송금 서버를 뒀다. 그러나 국내 규정은 금융 사업자는 클라우드를 서버로 쓸 수 없고, 반드시 물리적 서버를 갖추도록 요구했다. 모인 직원들은 이미 개발한 서버를 물리적 저장 공간에 담을 수 있도록 데이터 구조를 바꾸는 작업을 새로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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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인'의 서일석 대표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R&D캠퍼스에서 창업 과정을 털어놓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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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로 여의도로, 공무원 만나려 교통비만 월 백만원
그는 "그나마 이 정도 규정이 나온 건 핀테크산업협회와 함께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송금업을 이해시키려 발품을 판 덕"이라고 했다. 그는 "규정이 나오기까지 세종시의 기획재정부, 여의도에 있는 금감원, 광화문의 금융위원회를 다니느라 교통비만 한달에 백만원 넘게 쓴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돈도 돈이지만 스타트업은 시간과의 싸움인데 공무원들을 만나기 위해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고 덧붙였다. 공무원과의 미팅은 그나마 핀테크산업협회가 나서는 경우에만 겨우 성사됐다. 개별 기업을 만나는 걸 공무원들이 꺼렸기 때문이다.

8개월에 걸쳐 라이센스 요건을 다 갖췄지만 정작 사업 유형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막판에 제외했다. 블록체인 기술에 의구심을 갖는 정부 분위기가 바뀌지 않아 다른 송금 기술들로만 허가를 받았다. 아이디어가 좋다고 정부가 상을 준 기술은 정작 제외된 셈이다.

블록체인 이용 송금, 해외서는 확산 중
해외 송금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 미국·일본 등 해외 현지에 있는 모인의 계좌나 파트너사 계좌로 돈을 미리 거액을 보내놓고 송금 요청을 처리하는 '프리펀딩' 방식, 현지서 보내오는 돈과 한국서 보내려는 돈을 상계시키는 '트랜스퍼와이즈' 방식 등이 있다. 모인은 이들 두 방식을 중심으로 사업 허가를 받은 뒤 송금업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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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을 통한 송금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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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을 이용한 송금도 원리는 복잡하지 않다. 각 나라의 핀테크 사업자들이 참여해 '송금 네트워크'를 꾸리고 고객의 송금 요청을 이 네트워크 상에서 암호화폐로 주고 받는 것이다. 한국의 A가 모인을 통해 미국의 B에게 송금을 요청하면 A와 B는 현금을 보내고 받지만 그 과정은 네트워크상에서 핀테크 업체끼리 암호화폐로 주고 받는 원리다. 이렇게 송금하면 수수료가 은행을 이용할 때보다 최대 10분의 1까지 줄어든다. 서 대표는 "해외에서 점차 활용도가 높아지는 블록체인 활용 송금 기술을 국내에서도 확보해둬야 이 방식이 확산할 경우 소외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규제샌드박스 신청은 새 송금 방식을 미리 확보해두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창업 겨우 성공했지만 스타트업엔 '사업 폭'도 규제
블록체인 기술을 빼놓고 천신만고 끝에 창업하고 나서 보니 스타트업에는 ‘사업 폭 규제'도 심했다. 기존 은행과 똑같이 자금세탁 방지법, 고객 확인 규정 등을 모두 적용 받는데도 송금 가능 액수는 크게 차이가 났다. 은행을 통한 송금액은 한도가 없지만 모인같은 해외 송금업자는 연 3만달러, 한번엔 3000달러 이하로 송금액이 제한된다. 송금액에 비례한 수수료를 주수입원으로 삼는 업체들을 옥죄는 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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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인'의 서일석 대표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R&D캠퍼스에서 창업 과정을 털어놓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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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으로 신산업 재단하면 어떤 도전도 불가
정부가 모인의 신청을 허가할 경우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송금업이 국내에 본격 등장한다.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경우 정부는 언제든 규제 샌드박스에서 제외할 수 있다. 서 대표는 "법은 과거, 기술은 미래인데 그 간극을 메우는 제도가 규제 샌드박스"라며 "지금이라도 이 제도를 마련해 준 정부에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행법 저촉의 프레임 만으로 신산업을 보면 아무런 도전도 할 수 없는 나라가 되고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한 회사만 살아남는 경제가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유명무실해지지 않기를, 성공적인 신산업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3년간, 길고도 험한 창업 과정을 거친 서 대표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는 '섶에 누워 쓸개를 핥다'라고 적혀 있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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