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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식생활 떠받친 소반 거칠게 칠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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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반·기와 주제 ‘한눈에…’시리즈

공예 제작 과정·장인과의 대담 수록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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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쓰면서도 허투루 보던 물건, ‘구식’이라 낮춰 보고 함부로 내던졌던 물건, 쓰임새는 간단하나 만들기는 까다로운 물건. 과거엔 식생활의 필수 가구였던 소반, 목조건물 지붕에 얹는 기와도 이런 물건에 속한다. 2011년부터 ‘우리공예·디자인리소스북’이라는 아카이브 시리즈를 매년 펴내고 있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올해엔 소반과 기와를 주제로 한 책을 발간했다. <한눈에 보는 소반>(최공호·김미라 지음), <한눈에 보는 제와>(김성구 지음).

‘옛 시절의 정겨운 장면’을 떠올릴 때, 흔히 식구가 한 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밥 먹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한국의 전통 음식문화는 ‘1인1반(盤)’을 원칙으로 했다. 각자 소반 한 상씩 앞에 놓고 격식을 차려 밥을 먹었다. 다과용, 제사용, 혼례용 등 용도에 따라 소반 종류도 다 달라서 규모 있는 양반집에선 소반을 100개도 넘게 갖춘 경우도 많았다. 소반은 일상생활에 매우 밀접한 물건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신체 조건에 긴밀이 연동돼 있다. 연구자들이 제작 시기와 지역이 다른 소반 100점을 분석한 결과, 소반 100점의 상판 평균 높이는 28.75cm로 높고 낮은 것 차이가 3cm 정도에 불과했다. 연구자들이 1900년께 저고리의 화장 길이 등 토대로 당시 여성의 신장을 계산해 키·팔꿈치 동선을 계측해봤더니 평균치인 28.75cm 정도가 가장 적절한 높이였다고 한다. 또 소반은 상판에 쓰인 나무가 상하지 않도록 옻칠 등을 해야 하는데, 장인들은 일부러 거칠게 칠 마감을 했다. 추운 겨울, 물행주로 닦은 소반에 살얼음이 끼면 그릇이 미끄러져 떨어질 것을 우려한 장인들의 지혜였다. 대표적인 소반의 종류로는 나주반, 해주반, 통영반 등이 있는데 제작 방식, 모양 등이 서로 달라 마치 ‘소반 삼국시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책 말미에 소반장(국가무형문화재 99호) 김춘식 선생과 지은이, 전문가와의 대담을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높였다. 나주반을 만들기 위해 20여년간 수백개의 상을 해체해 연구했다는 김춘식은 “헌 상은 나의 스승”이라며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언젠가 결국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목수라고 생각하면 목수밖에 안된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소반을 어떻게 사용하길 바라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아깝다고 안 쓰면 뒤틀린다. 집을 비워놓으면 버리듯이, 상은 함부로, 자주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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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는 단순히 전통 건축 부재일 뿐 아니라 동양 목조건축의 상징적 공예품과도 같다. 한옥의 기와 물결에 감탄해본 사람에겐 <한국의 제와>가 흥미로울 수 있다. 암막새·수막새, 서까래기와, 치미, 취두, 용두 등 기와의 복잡한 종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한 장의 기와를 만들기 위해선 보름이 꼬박 필요하다며 “기와엔 혼을 불어넣는 정성이 필요하다”는 와장들의 말을 들으면, 깨진 기와에도 다시 한번 눈길이 머물 것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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