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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여섯 남은 위안부 피해자 '나눔의 집'엔 적막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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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영상 기자, 박가영 기자, 조준영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도 이제 23명뿐…"이제 조용해, 사람 많을 땐 명절 분위기 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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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만난 이옥선 할머니(90). 1942년 중국 옌지(延吉) 위안소로 끌려가 고초를 겪은 이 할머니는 2000년 6월, 58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사진=박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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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지 뭐. 이제 몇 명 남지도 않았어."

경기도 광주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나눔의 집'에 사는 이옥선 할머니(93)에게 설 명절은 특별하지 않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게 대부분이다. 부산 출신인 이 할머니는 고향 생각, 가족 생각이 나지만 거동이 불편해 멀리 나갈 수도 없다. 올해도 나눔의 집에 남아 명절을 보내기로 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전엔 열댓 명이 함께 살아서 명절 분위기가 났는데 나이를 하나둘 먹으니 다들 가고(죽고) 없다"고 말했다.

이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6명. 이옥선 할머니를 포함해 강일출(91), 박옥선(95), 정복수(103), 동명이인인 이옥선(90), 하수임(89) 할머니가 함께 지내고 있다. 평균 연령도 어느덧 90세를 훌쩍 넘겼다.

◇큰집 같던 거실엔 고요함만 남았다=설 연휴 첫날인 2일 오전 10시. 나눔의 집 생활관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 등 20여명이 이옥선 할머니를 둘러싸고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치 온 가족이 모인 큰집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단란한 시간도 잠시. 오전 11시쯤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나눔의 집엔 적막감이 감돌았다. 손님을 맞던 이옥선 할머니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방으로 돌아갔다. 이옥선 할머니는 "설에 세배한다고 많이들 찾아온다"며 "손님 맞는 것 말고는 명절에 딱히 하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옥선 할머니 맞은편 방에는 또 다른 이옥선 할머니가 있다. 속리산에서 생활하다가 나눔의 집에 들어왔다고 해서 속리산 할머니라고 부른다.

속리산 할머니도 이제 명절에 큰 감흥이 없다. 같이 살던 할머니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버린 탓이다. 2008년 처음 나눔의 집을 찾았을 때만 해도 설이 되면 제법 명절 분위기가 났다고 한다. 속리산 할머니는 "여럿이 살 땐 시끌벅적했는데 지금은 명절이 왔는지도 모르게 지나간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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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선 할머니 방에 걸린 사진들./사진=박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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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중국에서 2018년 청와대까지…사진에 담긴 이야기=이옥선 할머니의 방은 흡사 사진 전시관 같았다. 이 할머니는 사진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을 술술 풀어냈다.

그 중 지난해 1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가장 인상 깊은 사진으로 꼽았다. 그날 "일본에게 얼른 사죄를 받아달라"는 할머니의 호소에 문 대통령이 "힘쓰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이전 정부와 달리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이 할머니의 사진도 벽 한편을 장식했다. 나눔의 집에 봉사활동을 하러 온 시민들이 찍어준 사진이다.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이 할머니에겐 단 하나뿐인 결혼사진인 셈. "고우시다"는 기자의 말에 이 할머니는 쑥스러워하면서도 기분 좋은 듯 크게 웃었다.

이 할머니의 앳된 모습도 눈에 띄었다. 고작 16살이던 1942년 중국으로 끌려간 할머니가 21살 때 찍은 사진이었다. 광복 이후에도 중국에서 가정을 꾸려 생활하던 이 할머니는 2000년 귀국, 이듬해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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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되자 제일 먼저 거실로 나온 이옥선(속리산) 할머니. 식판 옆엔 속리산 할머니가 좋아하는 쌈 채소도 놓여있다./사진=박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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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사죄할 때까진 못 살지 않을까?"=낮 12시 점심시간이 되자 이옥선 할머니와 속리산 할머니가 생활관 1층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예전엔 2층 식당에서 직원과 함께 밥을 먹었지만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많아지면서 거실에서 끼니를 해결하게 됐다.

이날 점심 메뉴는 소불고기와 쌈 채소. 속리산 할머니가 좋아하는 메뉴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할머니들이 고기를 좋아해 고기 메뉴를 자주 준비한다"며 "이가 불편한 할머니들은 고깃국물로 영양소를 보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옥선 할머니도 식판을 받자마자 흰 쌀밥을 한 술 크게 떴다. 10여분 만에 한 그릇을 다 비울 정도로 정정한 모습이었다. 이옥선 할머니는 "잘 먹어서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 같다"면서도 "일본이 사죄할 때까지는 못 살 것 같다"고 말했다. 1992년 김복동 할머니가 국제사회에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를 공개한 지 27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할머니들은 일본의 사죄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달 28일 김복동 할머니와 이모 할머니의 별세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23명뿐. 이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싸우던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김복동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데모 나가면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사는 곳이 멀어서 자주 만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영상 기자 video@mt.co.kr, 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조준영 기자 ch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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