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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팀장칼럼] 대통령과의 대화가 불편한 기업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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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정부가 좀 더 기업 의견을 경청해주면 기업도 신바람 나게 일해 ‘함께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세계의 지도자들과 소통하는 기업인이 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새겨 들었어야 할 대목이다.

이날 2시간 동안 진행된 대화에서 기업인들은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 개선, 탈원전, 상법·공정거래법 개정 등의 문제를 호소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장관들은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단 답변을 안하거나 기존에 나왔던 정부의 입장을 반복했다. 대신 문 대통령은 "기업에 당부드리고 싶다. 투자와 혁신이 중요하다"며 기업의 역할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재용 부회장이 "저희(삼성) 공장이나 연구소에 한번 와달라"고 하자 "언제든지 가겠다"면서도 "삼성이 대규모 투자를 해서 공장을 짓거나 연구소를 만든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이 부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에게 그냥 넘겨들을 수 없는 숙제가 됐다.

5대 그룹 총수를 포함해 128명이 참석한 행사에서 발언 기회가 주어진 기업인은 고작 17명에 불과했다. 111명은 2시간 동안 병풍 역할을 했다는 우스개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은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발언) 기회가 안 왔다"면서 아쉬워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과 장관들이 정부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할 바엔 차라리 귀한 시간을 낸 기업인의 애로사항을 좀 더 들었으면 어땠을까.

산업현장에선 ‘규제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기업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치는데, 문 대통령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좋은 일자리, 둘째, 상생과 협력"이라며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말들만 늘여놓았다.

‘혹시나 문 대통령이 가려운 곳을 긁어줄까’하고 기대했던 기업인들은 ‘역시나 이번에도…’라며 한숨만 내쉬었다. ‘2019 기업인과의 대화’는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 관련 상법 개정,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법안인 협력이익공유제 도입 등 기업 활동을 어렵게하는 현안들을 해결하지 못한채 답답함만 남겼다.

뭔가 풀릴 듯하면서도 결국 풀리지 않는 ‘희망고문’을 받을려고 128명이나 되는 기업인이 청와대까지 간 것일까. 대통령이 기업인과 소통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은 기업경쟁력이나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기업의 역할만 강요하고 ‘지금 정부는 잘하고 있다’며 자화자찬하는 대통령에게 어떤 기대를 가질 수 있을까. 친기업 소통은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하는 기업인들을 ‘오라가라’하는 것이 아니라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도록 규제부터 풀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문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설성인 재계에너지팀장(seol@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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