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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노트북을 열며] 스준생·토준생의 취준생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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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이 되는데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 남들에게 꿇리지 않는 어학 점수, 그리고 정성(定性) 평가에 대비한 각종 공모대회·해외봉사 등의 ‘스펙’이다. 청년들은 이를 취준생이라는 말에 빗대 토익을 준비하는 ‘토준생’, 스펙을 준비하는 ‘스준생’이라 일컫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스펙을 쌓기 위해 대외활동을 하는 모임이나 특정 주제를 연구하는 스터디 조직 등에 들어가려면 또 다른 시험과 면접을 거쳐야 한다. 특정 자격증이나 일정 수준 이상의 학점을 요구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영어 시험도 예전에는 객관식 문제로 갈음했지만, 요즘은 토익스피킹이나 오픽 같은 말하기 시험까지 준비해야 한다. 취업 합격자들의 평균 토익 점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이렇다 보니 청년 사이에서는 ‘본격적인 취준생이 되기에 앞서 완벽한 스준생·토준생이 되어야 한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까지 나온다. 대학 입학 전까지는 사교육비로 부모들의 허리가 휘고, 대학에 가서는 전공 공부에 취업용 영어 점수 및 스펙 쌓기로 시간·비용을 투입한다. 대졸 취업자가 스펙 비용으로 쓰는 돈이 1인당 4000만원이 넘는다는 조사도 있다.

이처럼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췄음에도 길거리에는 청년 실업자들이 넘쳐난다. 한국의 20대 후반 청년실업률은 2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4.4%보다 훨씬 높다. 이 연령대 실업자 비중이 20%를 넘긴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걱정은 앞으로 청년들의 실업난이 더욱 심각해질 거라는 점이다. 역대 최다였던 2010~2014년 사이의 대학 신입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시장에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최근 청년들을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3년간은 (청년 취업이)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청년들의 거듭된 취업 실패는 취업 포기와 삶에 대한 비관론으로 이어진다. 이들이 좌절하면 사회는 의욕이 사라져 활력을 잃게 된다. 특히 소득 없는 청년들의 증가는 잠재성장력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청년 취업에 악영향을 주는 정책이 곳곳에 도사린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은 채용을 줄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이미 직장 울타리 안에 들어선 사람만 좋았지, 새로운 취업의 문을 좁게 만든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은 자동화 확대와 공장 해외 이전이라는 엉뚱한 결과로 이어진다.

청년실업은 미래에서 보내오는 엄중한 경고다.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국가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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