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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1919 한겨레] 차별 조장하고 뒤로 훈수 두는 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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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리ㅣ조선 내 일본인들 우월의식에 총독부 경고

승진 차별과 태형하면서 일선동화라니 가증스러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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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조선 왕세자 이은과 일본 공주 마사코의 결혼이 추진 중인 가운데 작년부터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일선동화’의 사례로 일본인과 조선인이 결혼한 가정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조선 내 일본인들의 안하무인이 하늘을 찌르는데 말로만 ‘조선과 일본은 하나’라고 떠드는 기만책이 가소롭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작년 12월12일 <매일신보>는 경시총감부 통역관으로 일하고 있는 재조일본인인 와타나베 다카지로 가정을 소개한 기사를 실었다. 30여년 전 경찰관으로 조선에 온 그는 조선인 박완양씨의 영애인 박곡자와 혼인해 10남매를 낳았다. 조선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집안에서도 유창한 일본어를 사용한 아내 박씨는 지난 세월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시집왔을 때 조선측의 비평도 많이 들었고 우리 영감도 일본 사람들에게 여간 시비가 아니었어요. 소란할 때는 고생도 적지 아니하고 핍박도 여간치 않게 받았어요.”

병자년(1876) 부산 개항과 더불어 조선에 온 일본인들의 조선인에 대한 우월감과 선민의식이 가관인데 조선인 아내로서 박씨의 설움을 알 만하다. 실제 일본인들의 꼴사나운 지배자 행세가 얼마나 심했냐면 이미 강제 병합 당시 총독부가 일본인 관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했을 정도다. “일본 국민들이 이번 합병을 강대국이 약소국을 정복한 결과로 간주하거나 이와 같은 잘못된 생각 하에 거만하고 품위 없는 태도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이는 제국이 추구하고 있는 참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중략) 일본인은 한국인이 우리의 형제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호감과 우정으로 그들을 대하고 그리하여 상호 협력하고 협동하여 두 민족 모두 제국 전체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자기 몫의 기여를 해야 한다.”

물론 이 경고문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곤란하다는 건 동네 코흘리개도 안다. 기관과 조직 내에서 조선인이 승진을 못하게 하고 조선인만 태형이라는 형벌로 볼기짝을 때려 차별하는 당사자가 바로 총독부니까 말이다. 일본인들의 망동을 조장해놓고 뒤에서 훈수 두는 꼴이라니. 가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한편, 가히 ‘식민지’ 조선에서 반(半)일본인이 다 된 박씨. “이번 이 왕세자의 가례는 더할 수 없는 경사”라는 그는 이토 공이 말한 조선이 일본처럼 되는 길의 일환이라며 침략의 주구인 이토 히로부미를 그리워하였다.

【마포 오첨지】



△참고문헌

-전성현, ‘식민자와 식민지민 사이, ‘재조일본인’ 연구의 동향과 쟁점’(역사와 세계·2015)

-이동훈, ‘‘재조일본인’ 사회의 형성에 관한 고찰’(일본연구·2018)

-권보드래, <1910년대, 풍문의 시대를 읽다>(동국대학교 출판부·2008)

-얼레인 아일런드 지음, 김윤정 옮김, <일본의 한국통치에 관한 세밀한 보고서>(살림·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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