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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과 이별을 앞두고 있는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에게 운명의 시간이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다. 오는 15일(현지시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합의안이 영국 하원의회 투표를 앞두고 메이 정부와 의회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며 '강대강' 대치로 맞서고 있다. 이미 한 차례 의회 투표를 연기한 메이 총리는 이번 의회와의 일전에 자신의 모든 정치생명을 걸고 있지만 전망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15일 의회 투표가 부결되면 영국은 또 한 차례 격랑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메이 총리의 보수당 정부가 정부 주요 부처 공무원 약 4000명에게 일상 업무 대신 '노딜 브렉시트'를 대비하는 데 주력하도록 지시를 내렸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11일 보도했다. 브렉시트 시나리오 가운데 최악으로 간주되는 노딜 브렉시트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노딜 브렉시트란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와 결별하는 것을 뜻한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교육, 법무, 복지 등 5개 부처 공무원들에게 수 주 내로 새로운 역할을 이행하도록 지시를 내렸으며, 임시 업무가 최소한 6개월간 지속될 예정이다.
더타임스는 만약 영국이 합의 없이 오는 3월 EU를 탈퇴한다면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노딜 담당 공무원 4000여 명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특히 관세나 농업 등 담당 부처 공무원의 증원이나 직무 전환이 시급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타임스는 일부는 전문가나 외부 모집을 통해 인력을 보충할 것이나 대부분은 내부에서 충원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날 조너선 슬레이터 교육부 사무차관은 직원들에게 부처의 핵심 서비스를 유지하는 외에 노딜 브렉시트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필요한 작업을 지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만약의 사태를 준비하는 동시에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의회 통과를 위해 제1야당인 노동당을 회유하는 데 나섰다. 10일 가디언에 따르면 총리실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정부가 노동당 의원들이 발의한 노동·환경 보호 강화 법안을 지지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존 맨·캐럴라인 플린트 노동당 의원 등이 발의한 이 법안은 브렉시트 이후에도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 환경, 환경 기준 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총리실이 공개적으로 노동당 지지를 원한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15일 브렉시트 합의안 의회 투표에서 노동당 내 반란표를 잡기 위한 승부수로 해석된다. 현재 야당뿐만 아니라 보수당 내 강경파와 연립정부를 구성해 온 북아일랜드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마저도 EU와의 합의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혀 메이 총리는 노동당의 표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의 뜻은 강경했다. 그는 이날 잉글랜드 북부 웨이크필드에서 한 연설에서 "메이 총리에게 말한다"며 "당신의 합의안에 자신 있다면 총선을 열어 국민이 결정하도록 하자"며 조기 총선을 압박했다고 BBC가 전했다. 코빈 대표는 "조기 총선으로 선출된 집권당이 EU와 새로운 브렉시트 협상을 해야 의회와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당은 브렉시트를 철회하고 영국을 영구히 EU 관세동맹 안에 남도록 하면서 단일시장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간다는 방침이다.
영국 '고정임기 의회법(Fixed-term Parliaments Act 2011)'에 따르면 조기 총선은 하원 전체 의석 중 3분의 2 이상의 의원이 찬성하거나 내각 불신임안이 하원을 통과하고 다시 14일 이내에 새로운 내각에 대한 신임안이 하원에서 의결되지 못하면 열린다.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불만을 품은 의원들은 정부에 제동을 거는 법안을 잇달아 통과시켰다. 보수당 내 친 EU 성향인 도미닉 그리브 의원은 메이 합의안이 부결될 때 정부가 3일 이내에 대안을 제시하도록 하는 안을 상정했다. 하원은 찬성 308표, 반대 297표로 통과시켰다. 기존에는 21일 이내에 대안을 내놓도록 했는데 브렉시트 시한이 촉박한 만큼 빨리 다른 안을 찾도록 메이 총리를 압박하기 위해서다. 앞서 하원은 메이 합의안이 부결되면 의회 승인 없이는 정부가 노딜 브렉시트를 준비하는 데 재정을 지출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처리했다.
메이 총리가 합의안에 대해 전혀 개선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만 가고 있다. 영국 정치권이 브렉시트 난맥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의회에서 합의안 부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브렉시트 탈퇴를 다시 묻는 '제2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10일 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영국 정부가 다른 EU 회원국 동의 없이도 일방적으로 브렉시트 통보를 철회할 수 있다고 판결해 영국 내 EU 잔류파에 힘을 실어줬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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