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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교수 갑질 견디다 못해 대학원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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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 성폭력·노동착취 등 제보 ‘대학원생 119’ 출범

‘전통’ 돼버린 연구비 갈취…자녀 과제·봉사활동까지 시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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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성균관대 대학원생 ㄱ씨는 교수·연구원의 꿈을 버리고 대학원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지도교수의 ‘갑질’ 때문이다. 이 교수는 선임연구원을 ‘방장’으로 임명해 연구원과 대학원생의 통장을 관리하게 했다. 이후 학교에서 이 통장으로 지급한 연구비 중 일정 금액을 자신의 통장으로 입금시키도록 했다. 한 대학원생은 5년 동안 8000만원을 빼앗겼다. 또 다른 대학원생도 300여만원을 교수 통장에 입금했다. 교수는 대학원생들에게 현금으로 돈을 찾아 자신의 통장에 입금시키라고 지시해 증거를 없앴다. 이 교수에게 지도를 받던 대학원생 10명이 모두 ‘연구비 갈취’를 당했다.

이 중 4명이 교수의 ‘갑질’을 견디지 못해 대학원을 그만뒀다. 이 교수는 이들의 대학원 선배를 통해 통장에 남은 연구비를 자신에게 보내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연구비 갈취는 대학원생들에게 대대로 내려온 일종의 ‘전통’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떠나는 대학원생들도 통장에 남은 연구비를 내놔야 했다.

대학원생들은 교수 자녀의 보육·교육도 책임져야 했다. 유치원 등·하원을 시켰고, 그림일기·독후감 숙제도 맡았다. 대학생이 된 자녀의 봉사활동을 대신 해주기도 했다. 이 자녀가 대학원을 준비할 때 진학을 위한 논문 연구작업에도 동원됐다.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도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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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논문을 평가하는 지도교수에게 한번이라도 미움을 산다면 10년 이상 공부가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대학원생들은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같은 달 ㄱ씨는 국민권익위원회와 교육부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직장갑질119도 찾았다. 직장갑질119는 2017년 11월 출범한 시민단체다. 이곳에서 150여명의 노동전문가, 노무사, 변호사가 무료로 활동한다. 지난 1년 동안 오픈카톡, e메일, 밴드를 통해 직장갑질119로 들어온 제보는 총 2만2810건으로 하루 평균 62건에 달한다.

직장갑질119와 민주노총 전국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생이 교수에게 부당하게 당한 사례를 공유하고, 이들 권리를 보호하려고 ‘대학원생119’를 만들었다. 네이버 밴드에 가입한 대학원생이 인적사항을 남기면 직장갑질119가 교수나 대학 직원이 아닌지 확인 절차를 거친다. 대학원생으로 확인되면 정식 가입돼 갑질 등을 제보할 수 있다.

2017년 9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대학원 석·박사 과정생 및 박사후 과정생 등 연구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원 연구인력의 권익 강화 관련 설문’에 따르면, 대학원에 갑질이 존재한다고 밝힌 이는 전체 응답자(197명) 중 74.1%(146명)였다. 응답자의 39%(77명)는 교수의 우월적 지위와 인권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꼽았다. ‘진로 변경의 용이성’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2.4%(123명)가 ‘어렵다’고 대답했다.

직장갑질119는 “비싼 등록금에 쥐꼬리만 한 장학금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가장 지성적이어야 할 대학에서 각종 교수 갑질, 성폭력, 연구저작권 강탈, 노동착취가 만연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대학원생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법률 상담을 진행하고 대학원 사회의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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