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국민투표” 목소리도 커져
“비상예산 3조원 편성할 것” 내각은 ‘노 딜’ 상황 대비 나서
EU 집행위원회도 대책안 발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친 유럽연합(EU) 성향 시위대가 18일 영국 런던 의회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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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공식적으로 유럽연합(EU)을 떠나기로 한 2019년 3월 29일 ‘브렉시트 디데이’가 10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그 브렉시트가 어떤 형태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테리사 메이 내각과 EU 집행위원회가 마련한 합의안이 영국 하원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과 EU가 각각 ‘노 딜(합의 없는 브렉시트)’ 비상대책을 마련했고 영국 5대 기업 대표단체는 “노 딜만은 막아달라”고 정부에 호소했다.
브렉시트 발효를 100일 앞둔 19일(현지시간) 영국 언론의 머리기사는 온통 ‘노 딜’로 가득했다. 전날 오전 영국 정부 각료 회의에서 노 딜 브렉시트 대비에 박차를 가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내무부 등에 총 20억파운드(2조8,000억원)의 비상예산을 편성하고, 최대 14만여개에 이르는 기업을 대상으로 노 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비할 것을 촉구하는 서신을 발송하기로 했다. 또 게이빈 윌리엄슨 국방장관은 이날 의회에서 “혼란에 대비해 병력 3,500명을 대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다는 입장이지만 산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영국산업연맹(CBI)과 영국상공회의소, 소기업연맹(FSB) 등 5개 영국 기업 대표단체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정부에 노 딜 브렉시트 방지를 요구했다. 이들은 “정치인들이 당리에 골몰하는 동안 업계는 공포 속에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라며 “수많은 기업이 짧은 시간 내에 노딜 (브렉시트)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설상가상 영국 정부가 준비 중인 강력한 이민자 규제안도 기업의 공포를 부르고 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저임금 노동자 유입을 막기 위해 연간 3만파운드 이상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숙련 노동자만 영국 내로 이주를 허가하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FT는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 등 친기업 성향 각료들이 이 정책으로 영국 경제가 심각한 손해를 입을 것이라며 극력 반대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고 전했다.
노 딜 가능성이 커지자 EU 집행위원회도 19일 총 14개 조치로 구성된 비상 대책안을 발표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기존 합의안에 따라 설정되는 ‘전환기’에 비하면 교통이나 금융서비스 등 일부 부문에서 혼란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하다고 FT는 전했다.
혼란 속에 영국 정치권에서는 2차 국민투표를 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메이 총리의 합의안과 노 딜, EU 잔류 등 세 선택지를 놓고 투표하자는 것이다. 스코틀랜드국민당과 자유민주당에 노동당과 보수당의 일부 친유럽 성향 하원의원까지 150여명이 2차 국민투표를 지지하고 있다. 지난 10일 유럽사법재판소(ECJ)도 영국이 일방적으로 탈퇴 취소 선언을 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잔류파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메이 총리는 물론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도 2차 투표 추진에 미온적이다. 양당 모두 EU 탈퇴를 선호하는 유권자의 목소리를 무시하기 어렵고, 100일도 안 남은 브렉시트 여부를 다시 국민투표로 묻는다면 절차 논란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메이 내각의 스티븐 바클리 브렉시트장관은 일간지 타임스오브런던 기고문을 통해 “2차 국민투표의 합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고 탈퇴파 유권자들이 대거 보이콧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분열주의적인 투표가 영국 민주주의의 근본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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