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3 (수)

‘경제 성장’ 구호 뒤 비리·부조리에 중독된 1970년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영화 ‘마약왕’ 19일 개봉

‘마약왕’의 흥망성쇠 그려…“후반 20분 연극 같은 연출”

감독 특유 맛깔나는 대사도…화려한 조연들 ‘호연’ 볼만

경향신문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마약왕>은 밀수업자에서 아시아의 가장 큰 마약 제조업자가 된 이두삼의 흥망성쇠를 그린 영화다. 이두삼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는 “마약 세계를 다룬 영화지만, 본질적으로는 마약 세계보다 한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집착·파멸을 다룬 영화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는 1972년 부산의 한 항구에서 시작한다. 금 세공기술자였던 이두삼(송강호)은 시계 등 귀금속 밀수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현해탄에서 일본과 거래하던 이두삼은 우연히 필로폰 배달 일을 맡게 된다. 이두삼은 일본 야쿠자로부터 ‘필로폰을 만들어 일본에 팔면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이두삼은 밀수업자들을 집중 단속하던 중앙정보부(중정·국가정보원의 전신)에 덜미를 잡히고, 동료에게 배신당한 채 중정 조사실에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한 뒤 수감된다. 이 일을 계기로 이두삼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연을 만들 필요성을 절감한다.

출소한 이두삼은 경찰과 끈이 있던 최진필(이희준) 등과 손잡고 필로폰을 만들어 유통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두삼은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브랜드까지 붙여 일본 등 해외에 필로폰을 수출하며 부를 축적한다. 동시에 마약 거래로 쌓은 천문학적인 돈을 일선 경찰부터 중정 고위급 등 정계에 뿌리며 승승장구한다. 그사이 부산지방검찰청에 부임한 검사 김인구(조정석)는 마약사범 검거 중 이두삼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의 뒤를 쫓는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마약왕>은 1970년대 메스암페타민, 일명 필로폰 또는 일본식 표현 ‘히로뽕’을 가공 판매해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마약왕’으로 불렸던 한 남자의 흥망성쇠를 그렸다. 이두삼은 부산에서 활동하다 1980년 검거된 이황순 등 실제 마약사범들의 이야기를 묶어 만든 인물이다. 감독 우민호(47)는 18일 진행한 인터뷰에서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이황순의 집 앞에서 검사와 경찰이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담은 보도사진이었다. 우 감독은 “<마약왕>은 이 사진 한 장에서 시작했다”며 “<내부자들>(2015) 이후 ‘이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는 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사진을 봤다. 우리나라에서 가능한 일인지 너무 놀라워서 자료 조사를 해봤다. 이 시대니까 가능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마약왕이라는 제목도 관련 기사 헤드라인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1972~1980년 파란만장했던 이두삼의 삶을 따라가는 영화는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각종 비리와 불법이 횡행한 폭력과 야만의 시대를 보여준다. 영화는 경찰부터 중정 최고위급까지 모든 권력에 뒷돈을 대며 마약왕에 오른 이두삼이 동시대 최고 권력자였던 박정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중독되면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는 ‘권력’과 ‘마약’의 동일한 속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 감독은 “<내부자들>이 꽉 짜여 있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직설화법을 썼다면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마약왕>은 직설적인 것보다 은유와 상징을 넣어 간접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1973년 김대중 납치, 1979년 박정희 사망 등 당시 굵직한 사건들은 TV 뉴스로 재치있게 풀어낸다. 검사 김인구는 상부의 제지로 수사 진행이 어렵자 민주화운동 세력처럼 봉제공장 안에 수사팀을 꾸리기도 한다.

<마약왕>은 ‘조연 어벤져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정석·배두나·조우진·이성민·이희준·김대명·김소진 등 주연급 배우들이 개성 넘치는 연기를 펼친다. 그러나 역시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주연 송강호(51)다. 송강호는 소시민적인 이두삼의 초기 밀수업자부터 자멸하는 모습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한 영화에 담아냈다.

특히 모노드라마를 연상시키는 결말 부분은 송강호가 왜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인지를 증명해 보인다. 송강호는 같은 날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두삼은 한번 수렁에 빠지면 끝없이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간의 삐뚤어진 욕망과 집착을 보여주는 인물”이라며 “(관객 입장에서) 영화 전반부의 이두삼이 예전에 봤던 얼굴 중 하나라면, 무너져가는 자아로 발버둥치는 후반부의 모습은 (이전 출연작에서 선보인 적 없던) 새로운 얼굴”이라고 말했다.

우 감독은 이 결말 부분에 대해 “이두삼은 헛된 욕망을 맹렬하게 좇다 혼자 성에 갇혀 미쳐가는 리어왕이라고 할 수 있다”며 “후반 20분을 연극처럼 담으려고 했다. 관객들에게 조금 낯설게 다가갈 수도 있지만, 새로운 도전일 수 있으니 한번 해보자고 했다.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