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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세종풍향계] '최장수' 이찬우 차관보 사의표명, 기재부 여기저기서 한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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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경제정책의 뼈대를 만드는 역할을 했던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차관보는 일자리안정자금, 청년일자리대책 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행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08년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통합, 출범한 기획재정부에서 ‘최장수 차관보’ 타이틀을 갖고 있는 이 차관보의 사직에 세종시 관가(官街)가 적잖은 충격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조선비즈



19일 복수의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찬우 차관보는 2019년 경제정책방향 언론 대상 사전 브리핑이 있던 지난 14일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행정고시 31회인 이 차관보는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 종합정책과장, 경제정책국장 등을 거친 정부 내 대표적인 거시경제 정책통(通)입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2월 기재부 차관보로 승진해 2년 10개월 동안 재직했습니다. 기재부 역사상 최장수 차관보이고, 기재부의 전신(前身)인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진념 전 경제부총리 이후 두 번째 최장수 차관보 입니다. 진 전 부총리는 1982년에서 1987년까지 5년 넘게 경제기획원 차관보를 역임한 바 있습니다.

이 차관보는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렇지만, 기재부 안팎에서는 행시 32회인 이호승 1차관과 구윤철 2차관이 임명되자 용퇴를 결심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기수 중심인 정부 조직에서 후배 기수들이 상급자로 임명되면 자리를 물려주는 관례를 따른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

기재부 후배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 이유는 현 정부 출범 후 기재부가 추진한 크고 작은 정책들이 모두 그의 손끝에서 조율됐기 때문입니다. 하반기·내년 경제정책방향 등을 포함하면서 현 정부 출범 이후 발표된 10차례의 각종 종합대책이 모두 이 차관보 주도하에 수립됐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충격을 완충하기 위한 일자리 안정자금, 청년 일자리 대책, 자영업자 대책 등이 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7일 발표된 2019년 경제정책방향 마무리 작업에도 이 차관보가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기재부에서는 이번 차관 인사에서 그가 정부 내에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는 관료들이 많습니다. 일각에서는 이 차관보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추진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지만, 전 정부에서 1급으로 승진했다는 이유로 홀대를 받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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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에서 호남 출신들이 주요 정부 요직에 발탁되고 있는 분위기도 경북 영덕 출신인 이 차관보에게 불리한 요소였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번 차관급 인사에서 TK(대구경북) 출신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현 정부 핵심들과 호흡을 맞춘 구윤철 차관이 유일합니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일자리 안정자금의 안착과 각종 일자리 대책 등을 수립하기 위해 밤을 새우며 함께 고생을 했는데 차관보가 승진 인사에 포함되지 못한 것을 보니 허탈하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과장은 "각종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취업자수 등 각종 경제지표가 나아지지 않는 걸 답답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안타까워 합니다.

일각에서는 정부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재부에 대한 청와대의 장악 욕구가 지나치다는 반응도 내놓고 있습니다. 기재부 차관보는 경제정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직위이지만, 1차관으로 바로 승진한 경우는 드뭅니다. 재정경제부 시절인 2005년 박병원 당시 차관보가 1차관으로 승진한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최근 10년 동안은 기재부 1차관은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야 임명될 수 있는 직위로 인식됐습니다. 이 기간 중 차관보 출신 기재부 1차관은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유일한데, 그 또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거쳤기에 차관으로 임명될 수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정책을 기획하는 청와대 입장에서는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를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각종 인사 등에서 열심히 일한 공직자의 기여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세종=정원석 기자(lllp@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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