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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공항 민폐족 ‘극성팬’…이륙 지연·소란에도 처벌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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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보안법상 처벌근거 없어

#. 직장인 김모(32) 씨는 얼마 전 인청공항에 갔다가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출국 수속을 밟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이 떼로 몰려 뛰어가더니 갑자기 누군가의 사진 찍던 것. 이들은 전문용 카메라는 물론 사다리까지 동원했다. 알고 보니 이들은 출국 수속을 밟던 모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촬영하기 위해 단체로 몰려다니는 것이었다. 김 씨는 “한 곳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주위 사람들을 치며 뛰어갔다. 그 날 따라 출국 수속하려는 사람이 많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실제 출국자들이 아니라 아이돌 팬들이었다”며 “이들만 없어도 얼마나 공항이 훨씬 나을까 생각했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최근 한 아이돌 그룹의 해외 팬으로 인해 우리나라 항공기의 이륙이 지연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공항이나 항공기에서의 일부 아이돌 극성팬들의 ‘민폐’ 행동들의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1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오후 30시 25분께 홍콩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던 대한항공 항공기의 이륙이 한 시간이나 지연됐다. 중국인 3명과 홍콩인 1명이 갑자기 “급한 일이 있다”며 항공기에서 내리겠다고 한 것.

항공 규정상 이륙 직전에 승객이 한 명이라도 내리면 탑승객 전원이 하차한 뒤 보안 검색을 다시 거쳐야 한다. 하차한 승객이 폭발물 등 위험물을 두고 내렸을 가능성에 대비해서다.

알고 보니 이들은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팬들로 워너원을 보기 위해 항공기까지 탑승했다가 이륙 직전 내린 것이다. 이 때문에 탑승객 360여 명은 모두 하차한 뒤 보안 검색을 다시 거쳐야 했다. 이번 사건은 해외 극성팬의 돌발 행동이지만 국내에서도 일부 아이돌 극성팬들의 도가 지나친 행동은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들은 유명 아이돌 그룹을 직접 보기 위해 공항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일부는 항공권을 구매해 출국장까지 진입했다가 탑승 직전 예매를 취소하기도 한다.

공항시설법에 의하면 시설을 무단 점유하는 행위 및 공항 내에서 폭언 또는 고성방가 등 소란을 피울 경우 형사처벌도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이돌 팬들에게 무용지물이다. 팬들 대부분 공항 내에서 연예인의 움직임에 따라 이동하는데다, 팬들과의 마찰 등을 우려해 공항 측이 실질적인 조치를 꺼리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과 같이 어느 승객이 이륙 전 하차하더라도 처벌할 방도가 없다. 현행 항공보안법상 처벌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평화당 윤영일 의원은 지난 10월 악의적 하기를 방지하기 위한 항공보안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이륙 직전 부득이하게 항공기에서 내려야 할 경우 이를 입증할 증빙자료를 제출하도록 했고, 이를 어길 시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윤 의원은 “최근 이륙하기 전 승객이 단순한 심경 변화, 과음, 분실물 확인 등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이로 인해 항공사와 다른 승객들에게 막대한 시간과 비용 손실이 발생하지만 제재여부에 대한 법ㆍ규정이 없다”는 법안 발의이유를 설명했다.

이현정 기자/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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