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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새책>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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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인 박한선 서울대 강사가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휴머니스트)를 발간했다.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의 치료 사례들을 근거로 신경인류학 가설을 하나씩 증명해 나가는 책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우수한 두뇌 덕분에 번성했지만 왜 마음은 완전하지 않고 취약할까?’ 하는 궁금증에 대해 ‘마음의 진화적·문화적 설명’을 통해 해답을 탐구하고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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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사소한 일을 걱정하고, 괜히 불안해하고, 노심초사 고민하지만 결국 엉뚱한 결정을 내리고 후회한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날 야식을 먹는 의지 박약,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집착하는 관심병,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막연한 불안감, 한치 양보없이 다툰 후의 회의감 등은 마음의 취약성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마음의 결함을 동반자로 인식하고, 그것을 잘 다스려서 건강한 삶을 살자”고 제안한다.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자살예방협회장)는 “마음 진화의 근본을 찾는 신경인류학의 눈으로 환자를 비롯한 현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필자는 마음과 정신의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저자와 일문 일답.

―책 제목이 참 독특합니다. ‘홍적세’ 초기에 살았다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좀 억울해 하지 않을까요?

“사실 원래 생각하던 제목은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였습니다. 하지만 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어서, 논의 끝에 지금의 제목을 얻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여러 행동이나 정서, 인지, 관계 등 다양한 정신적 형질은 진화적 산물인 동시에 주변 환경에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했던 생태적 압력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매일매일 우리가 경험하는 정서적 고통, 인지적 고민, 대인 갈등 등을 긴 진화사적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죄 없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책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지나가다 딱 한 번 나옵니다. 다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대표되는 우리의 선조가 험난한 자연환경과 복잡한 사회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해온 진화적 결과물이 바로 현대인의 정신적 활동에 기저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신경인류학이 무엇인지, 처음에 신경인류학을 어떻게 접하게 되셨는지요.

“신경인류학은 인류학의 한 분야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진화인류학에 가깝습니다. 때문에 진화신경인류학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네요. 정신과 의사로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정신장애의 궁극적인 존재 원인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진단과 예방, 치료에 집중한 기존 정신의학적 접근 방법의 한계에 대해 갈증도 있었지만, 진화인류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도 또 다른 중요한 동기입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다소 늦은 나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정신과 전문의가 된 후 다시 신경인류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신경인류학이 환자들을 진료할 때도 도움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진단이나 치료에 적용할 수준은 아닙니다. 진화 의학 자체가 신생 학문이기 때문이죠. 심지어 미국에서도 진화 의학 정규 수업이 개설된 의과대학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몇 년 전에 처음으로 서울대 의대에서 90분짜리 진화론적 인간관 강의가 개설되었고, 부산대 의대에서도 올해 들어서 강의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화의학자 랜돌프 네스와 조지 윌리엄스가 말했듯이, 진화인류학적 사고는 기존의 다양한 의학적 패러다임을 거시적 관점에서 묶어주는 생각의 틀을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가설이 경합하는 정신의학에서도 신경인류학적 패러다임을 통해서 보다 통합적인 환자 이해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처럼 마음의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마음의 고통에 시달릴 때마다 우리는 그 원인을 주변에서 얼른 찾아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연인이나 가족 탓을 하거나, 자신이 속한 학교나 직장을 비난하곤 합니다. 더 나아가서 사회나 국가에 화살을 돌리기도 합니다. 반대로 나약한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린 시절에 사랑을 받지 못해 그렇다면서, 부모님을 원망하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 마음에 있는 고통은 종종 진정한 고통이 아니라 적응을 위한 불가피한 진화적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움과 질투, 우울, 불안 등의 감정적 고통, 어리석고 서툰 판단과 결정, 끊이지 않는 대인 갈등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신과를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마치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듯이, 우리 삶을 보다 건강하고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필요악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의 고통에 순순히 굴복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서툴고 불완전한 인간의 본성을 아예 지워버릴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이라는 자동차의 운전석을 폭주하는 본성에 넘겨주는 것도 현명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동반자로 인식하고, 잘 다스려서 의미 있는 삶의 경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박효순 기자 anyto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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