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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충무로에서] 영화 `변호인`,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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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송병곤 씨가 없었다면 21세기 대한민국 역사는 지금과는 다른 경로를 걷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송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생 항로를 바꾼 주인공이고 결국은 문재인 대통령 삶의 궤도까지 바꾼 사람이다.

그렇다. 송씨는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인 영화 '변호인'에서 잘나가던 세법전문 변호사 '송우석'을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국밥집 아들 '진우'의 실제 모델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81년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 '부림사건' 변호를 우연히 맡게 된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한 젊은이는 62일 동안 구금되어 있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겠다고 영도다리 아래부터 동래산성 풀밭까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헤매고 다녔다. 변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혹시 아들이 아닌지 가슴을 졸이며 뛰어갔다. 그 청년의 이름은 송병곤이었다. 청년은 내 앞에서도 공포에 질린 눈으로 슬금슬금 눈치를 살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때 치밀어 오른 분노와 거꾸로 솟은 피가 노 전 대통령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송씨는 1988년부터 노무현·문재인 법률사무소 주임으로, 1999년부터는 문 대통령이 일했던 법무법인 부산의 사무장으로 18년간 일하며 두 사람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최근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운영하는 공기업 GKL(그랜드코리아레저) 상임이사에 임명됐다. 송 이사 같은 경우를 '낙하산'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낙하산'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 분야에 '전문성'은 없더라도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이행해야만 하는 분야라면 대통령과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을 보낼 수 있다. 참여정부 시절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유 장관은 야당으로부터 '코드'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가장 성공적으로 장관직을 수행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송 이사의 임명은 수긍하기 어렵다. GKL은 "임원추천위원회가 송씨에 대해 서류 심사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주주총회에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절차를 지켰다는 강변이지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웠다"고 누구도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송 이사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인사'인지 묻고 싶다.

개인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영화 '변호인2'가 제작되기를 기대했다. 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모두 옆에서 지켜본 송씨의 시점으로 두 명의 대통령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변호인2'는 만들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 오랜 세월 두 명의 대통령 곁을 지킨 결과 주인공이 '카지노 공기업 임원' 자리에 오르는 결말은 너무 슬프지 않은가?

[김기철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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