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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2018사건 그 후] ⑤풍등에 홀랑 타버린 저유소…지금은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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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17시간 걸리고 117억원 피해…"법·의식 뒷받침돼야 제2의 사고 없어"

안전불감증이 낳은 사회기반시설 사고 잇따라…시민 불안감 증대

연합뉴스

저유소 화재, 솟구치는 검은 연기
(고양=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지난 10월 7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송유관공사 저유소에서 휘발유 탱크 폭발로 추정되는 큰불이 발생, 소방대원등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2018.10.7 pdj6635@yna.co.kr



(고양=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풍등 하나에 국가 주요 기반시설에 준하는 저유소가 홀랑 타버렸다.

17시간 동안 휘발유 46억원어치를 태운 뒤에야 불길은 꺼졌고, 수도권의 하늘을 가린 새까만 연기는 그 자체로 시민들에게 충격과 불안을 안겨줬다.

지난 10월 7일 오전 10시 58분께 경기도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의 휘발유탱크에서 불이 나 총 117억원의(휘발유 약 282만리터 포함) 피해가 발생했다.

유례를 찾기 힘든 이번 사고는 17년 전 SK를 최대주주로 하는 민영기업으로 전환한 대한송유관공사의 관리부실과 안전불감증이 주요 원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부의 불씨를 1차로 차단해야 할 인화방지망은 곳곳이 뜯겨 있는 것도 모자라 건초더미가 달라붙어 있었고, 화염방지기는 설치조차 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사고가 난 휴일에 안전관리 전담 인력은 1명도 없었으며, 휘발유 탱크 옆 잔디에 풍등이 떨어져 탱크 안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전까지 무려 18분 동안이나 대한송유관공사에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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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소 인화방지망, 틈 벌어지고 건초더미 덕지덕지
(고양=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고양 저유소의 유류탱크에 설치된 인화방지망의 허술한 관리 실태가 드러났다. 건조더미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손가락이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철망의 틈새가 벌어진 것도 있어 사실상 완전히 방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버드 스크린에 잔뜩 붙은 건초더미. 2018.10.12 [고양경찰서 제공] photo@yna.co.kr



그러나 수사 초기 경찰이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인 근로자 A(27)씨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며 긴급체포하자, 주요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A씨가 끼친 피해가 막대하다는 점에서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인 A씨에 대한 구속수사를 중단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 글까지 여러 건 올라왔고, 결국 A씨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은 검찰 단계에서 기각돼 A씨는 석방됐다. 다만 중실화 혐의는 여전히 적용된 상태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와 고양경찰서는 A씨 외에 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 혐의로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의 지사장 B(51)씨와 안전부장 C(56)씨, 안전차장 D(57)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또 설치되지 않은 화염방지기가 제대로 설치된 것처럼 공문서를 조작한 혐의(허위공문서작성)로 전직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 E씨(60·2014년 당시 6급)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뿐만 아니라 위험한 시설인 저유소가 사실상 무방비로 외부에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불안을 더 키웠다.

외부의 의도적인 공격을 막는 것도 어려운데,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터널공사까지 추진되는 등 주변지역이 개발되면서 위험요소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풍등도 사고 이전 인근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아버지캠프의 행사에서 날아와 A씨가 일하는 공사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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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저유소 화재 커지는 송유관공사 책임론 (PG)
[최자윤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여파가 컸던 만큼 사고 이후 각종 재발방지 대책도 쏟아졌다.

대한송유관공사 측은 즉시 안전자문위원회를 꾸려 저유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고 시나리오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수립 중이며, 정부는 저유소 시설을 비롯한 석유·가스 비축시설, 민간 석유저장시설 182곳을 대상으로 실태를 점검했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1차적으로는 인화방지망 등 화재예방시설의 크기와 형태 등 매우 구체적인 법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면서도 "아무리 예방 장치가 잘 돼 있더라도 안전의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인 교수는 "사고는 결국 관리감독을 얼마나 잘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라며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 문제를 해결해야 제2의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각종 사회기반시설 사고가 잇따르면서 시민들의 불안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 충정로 KT아현국사 화재로 통신 마비 사태가 벌어졌고, 이달 4일에는 고양시 백석역 사거리에서 열수송관 파열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화상을 입는 등 다쳤다.

철도 선로전환기 불량으로 강릉선 KTX가 탈선하는 사고도 났다.

고양시 주민 김모(28)씨는 "올해 유독 사고가 많아서인지 우리나라의 안전관리 체계가 너무 부실하다는 걸 자꾸 느낀다"며 "확실한 기준을 세우고 지켜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사원 송은하(32)씨는 "저유소 화재나 온수관 파열 등은 모두 시설물 관리를 철저히 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데서 더욱 안타깝다"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안전불감증이 심각한데 그로 인해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떠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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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백석역 근처에서 온수관 파열
(고양=연합뉴스) 지난 4일 오후 9시께 경기도 고양시 백석역 근처에서 지역 난방공사 배관이 터지는 사고가 나 시민들이 화상을 입고, 도로가 침수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2018.12.4 [독자 박혜연 씨 제공] photo@yna.co.kr



완전히 불에 타버린 휘발유탱크는 아직 복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대한송유관공사 관계자는 "탱크의 설계단계부터 안전성을 다시 보강해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며 공사에는 6개월가량이 걸릴 것"이라면서 "인천과 판교 저유소에서 물동량을 충당하고 있어 수급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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