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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먹고살기 힘들어서 어쩔 수가 없었어. 노인연금 20만원까지 털어야 겨우 월세가 마련되는 걸…."
서울 강서구에서 아내와 함께 미용실을 운영하는 정 모씨(74)는 최근 3개월 사이 경찰서를 다섯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옆집 슈퍼마켓 주인과 갈등이 극에 달해 서로 주먹다짐을 하면서 폭행 사건 조사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감정의 골이 파이기 시작한 건 정씨가 올해 6월부터 미용실 앞에 진열대를 설치해 컵라면 등을 팔면서부터였다. 정씨는 "올해 들어 장사가 워낙 안 돼 월세 내기가 힘들었다"며 "어쩔 수 없이 제품 몇 개를 팔기 시작했고 하루 4만원 정도 수익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포장된 완제품은 어디서든 판매할 수 있어 정씨 행위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불경기에 시달리는 옆집 슈퍼로선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슈퍼 주인 김 모씨(63)는 "이곳에서 7년간 장사했는데 요즘엔 매출이 없어 물건도 못 들여놓는다"며 "그 와중에 미용실에서 물건을 팔다니 너무 화가 났다"고 토로했다. 급기야 김씨 남편은 지난달 미용실을 찾아가 "물건 팔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싸움을 벌였다. 이로 인해 미용실 정씨는 정수리가 1㎝가량 찢어졌으며, 김씨 남편은 이빨이 부러졌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비심리 악화, 기업 회식 감소 등 여파로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처절한 생존 경쟁을 벌이다 못해 물리적 다툼을 벌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 강남구청은 일명 '함바(공사장 밥집)'를 운영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이례적 민원까지 접수했다. 강남구 개포동 재개발지구 내 소상공인들은 주민들이 점점 떠나가는 상황에서 함바까지 운영되자 매출이 뚝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이 함바 운영 중단 민원을 넣은 건 거의 처음 본다"면서 "그만큼 인근 상인들이 겪는 어려움이 큰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가게를 살리려다 의도치 않게 불법을 저지르는 자영업자들도 있다. 서울 마곡지구에서 갈빗집을 운영하는 신 모씨(55)는 장사가 너무 안되자 최근 가게 바깥에 '고기구이용 화로'와 바람막이 구조물을 설치했다. 갈비 냄새가 퍼지면 배고픈 손님을 유혹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었다. 하지만 바로 옆 편의점주가 가게를 가린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편의점주는 갈빗집이 영업을 방해한다며 하루에 2번 이상 민원을 넣기도 했다.
결국 구청의 철거 명령이 떨어졌지만 신씨는 "이미 2000만원 적자인데 고기구이용 화로까지 없어지면 암담하다"며 "죽기 직전의 상황이라 신고든 뭐든 무서울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도 최저임금이 인상돼 어차피 가게가 오래 못 버틸 것 같다"고 울상을 지었다.
임대료를 내기 버거운 자영업자들이 '상가 임대차 분쟁 조정'을 신청하는 건수 역시 급증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신청 건수는 2016년 1만1125건에서 올해 1~11월 1만5216건으로 증가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극한에 몰린 소상공인 사이에 생활고형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며 "경제난에서 비롯된 최근 갈등을 단순히 소상공인들의 탐욕으로 치부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희수 기자 /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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