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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디지털 성폭력 대책, 깨진 창에 테이프 붙이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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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선정 ‘2018년 100인의 여성’…디지털성폭력아웃(DSO) 하예나 대표

경향신문

지난 11일 만난 하예나 디지털성폭력아웃(DSO) 대표는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더 이상 민간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저작권보호원 지위에 대등하는 디지털성폭력 정부 감시 기구를 신설하는 등 정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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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소라넷’ 폐쇄 주도…회원들 후원으로 DSO 운영

‘웹하드 필터링’ 여전히 문제…민간에 맡기지 말고 정부 나서야


지난 11일 서울 강동구 허름한 반지하 사무실에서 디지털성폭력아웃(Digital Sexual Crime Out·DSO) 하예나 대표(21·본명 박수연)를 만났다. DSO는 상근활동가가 하씨를 포함해 3명뿐인 소규모 비영리 민간단체로 회원 200여명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저렴한 임차료를 찾다보니 월세 35만원짜리 3평 남짓 공간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곳을 거친 피해자는 300명이 넘는다. 하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5년부터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 폐쇄 운동을 위해 출범한 ‘소라넷아웃프로젝트’를 주도했다. 2016년 4월 경찰이 소라넷 폐쇄를 발표한 후에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700만원을 쏟아 DSO를 설립했다. 그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발 등을 지원하고 인터넷의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모니터링하는 등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주도해왔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지난달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2018년 100인의 여성’ 중 한 명으로 하씨를 선정했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다.

올해 디지털 성폭력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정부와 국회는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하씨는 “정부 대책 대부분이 깨진 창문에 청테이프를 붙여놓은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우선 오는 18일부터 시행되는 성폭력처벌특례법 개정안에 대해 하씨는 “형량 측면에서 볼 때 큰 발전을 이뤘다고는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자신의 몸을 자의로 촬영했다 하더라도, 촬영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제3자가 유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최대 3000만원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영리목적으로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경우에는 벌금형이 아닌 7년 이하의 징역형으로만 처벌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저작권법 위반은 징역 5년 혹은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아요. 개정되기 전 법률은 불법촬영물 유포 시 징역 1년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았고요. 이번 개정안으로 형량이 강화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인권이 저작권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거죠.”

하씨를 만난 이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웹하드 카르텔이었다. 올 초 정부는 불법촬영 문제에 대한 방지책으로 ‘DNA 필터링’(특정 영상물만이 가지는 고유의 특징을 추출, 서버에 저장해 재유포를 차단하는 기술) 기술 개발에 나서는 한편, 이를 웹하드 업체가 도입하도록 강제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여성 누리꾼들은 정부가 기술 개발을 맡긴 업체가 ‘제2의 웹하드 카르텔 업체’라면서 이날 ‘실시간 검색어 총공(총공격)’에 나선 것이다. 지난 9월 공개입찰을 통해 선정된 아컴스튜디오(현 버킷스튜디오)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소유한 뮤레카와 함께 민간 필터링 업체 시장을 양분해온 업체다. 온디스크·파일구리 등 대형 웹하드를 운영하는 비엔씨피라는 업체와 2015년까지 대주주가 같았다.

“영화, 방송프로그램 등에는 DNA 필터링 기술이 이미 적용돼 왔어요. 영화사, 방송사들이 감시 비용을 대고, 저작권보호원이라는 정부기관이 감시하니까 웹하드가 저작권 동영상은 건드리지 못했죠. 반면 아무도 감시하는 이가 없는 불법촬영물은 금칙어 설정 같은 저렴한 비용의 필터링 기술로 허술하게 관리돼 왔어요. 그런데도 또다시 민간 업체에 DNA 필터링 기술 개발을 맡긴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죠.”

하씨는 “민간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가 불법촬영물을 신고했을 때 웹하드사가 즉시 해당 영상을 삭제하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이른바 ‘양진호법’ 등 다양한 대책들이 나오고 있어요. 하지만 정부의 감시가 없으면 유명무실합니다. 저작권보호원 같은 디지털성폭력 정부 감시 기구를 신설하는 것이 근본적이고 유일한 대책입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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