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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석유를 붓고 불을 붙인 게 분명했다. 젖을 먹이고 있던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 중에 살아남은 것은 어미와 새끼 한 마리뿐이었다….”
최근 출간한 소설집 ‘무민은 채식주의자’(걷는사람·1만2000원)에 실린 위수정 소설가의 ‘검은 개의 희미함’은 동물구조협회에서 일하는 ‘나’의 시선을 담았다. 누군가의 장난 때문에 생사가 갈리는 약자, 즉 유기 동물들의 모습이 충격적이다. 구병모 김봄 정세랑 등 활발히 활동 중인 16명 소설가의 작품들을 한데 모은 이 소설집은 모두 ‘동물권(動物權)’을 소재로 했다. 요즘 ‘힙한’ 동물을 소재로 했지만 개나 고양이 키우기를 다룬 실용서가 아니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반려동물 100만 시대인 오늘날, 나와 타인을 이해하려는 문학의 저변이 새로운 가족으로 등극한 동물까지 확대되고 있다. 16편의 작품들은 낯선 쥐과 동물인 햄스터를 집에 들인 ‘내’가 쓴 약을 먹고 표정을 찌푸리는 모습을 보며 친근감을 갖게 되는(살아 있는건 다 신기해) 등 고양이, 개, 암소 등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감각과 지각 능력을 가진 생명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은 지난달 12일부터 이달 5일까지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업체 텀블벅에서 후원 모금한 결과, 목표금액 300만 원이 넘는 441만 원을 모으며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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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에세이)로 영역을 넓히면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다룬 작품은 종류도 많고 인기도 높다. 제주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다 길고양이 히끄를 만나 키우게 된 저자의 에세이 ‘히끄네 집’(야옹서가)은 지난해 10월 출간된 뒤 한 달 만에 5쇄를 찍고 현재까지 1만5000부 이상 팔렸다. 동물에겐 관심도 없던 저자는 히끄를 돌보며 생명의 무게를 깨닫고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해간다. 출간 직후 인터넷교보문고 국내도서 종합 1위(10월 4주)에 올랐다.
입양된 유기견 철수의 이야기를 담은 ‘오 나의 철수’(더블유미디어)도 현재까지 1만 부가 넘게 판매됐다. 이 책은 출간 전 예약 판매 만으로 초판이 매진돼 일주일 만에 2쇄를 찍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저자 안진양 씨는 “책 출간 이후 주변에서 유기견이나 잡종견을 가족으로 맞이했다는 분들의 소식을 들으면 철수가 단지 나만의 개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면서 “철수를 통해 여러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어 뿌듯하고 책임감도 무겁다”고 했다.
출판문학계 반려동물 트렌드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환생하는 반려견’이란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한 소설 ‘베일리 어게인’(페티앙북스)은 뉴욕타임스와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지휘 아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길고양이를 통해 깨닫게 된 ‘조건 없이 주는 사랑과 삶의 기쁨’을 기록한 에세이 ‘사랑해 나는 길들여지지 않아’(마리서사)도 현지 인기에 힘입어 최근 국내 번역됐다.
12년 동안 동물 책을 전문으로 출간해온 ‘책공장더불어’의 김보경 대표는 “반려동물만이 아닌 동물 문제 전반에까지 관심이 확대되고 나아가 문학에까지 눈을 돌리는 분들이 많아졌다. 10년 전에 비해 이들의 욕구를 맞출 수 있는 책들이 전보다 많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소설집 ‘무민은…’에 참여한 김봄 소설가는 “언어의 힘을 빌려 감정의 여러 층위를 건드리는 것이 문학의 본질인 동시에 기능”이라면서 “문학에서 나를 제외한 주변 사람을 지칭하던 ‘타자’ 개념이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보다 약한 존재, 즉 동물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은 근대 이후 문학의 시대적 맥락과 닿아 있다고 본다”고 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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