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아침 햇발] ‘돈키호테’ 전원책과 진화 포기한 ‘공룡 정당’ / 신승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

신승근
논설위원


‘태극기 부대 포용’을 주장한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태극기 부대는 헌정질서 부정 세력이다. 그래도 ‘문자 해촉’ 파문에선 김병준 비대위원장보다 전원책 변호사에게 더 신뢰가 간다.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위해 12월15일까지 당협위원장들 목을 치라는데, 가능하겠냐는 그의 말이 더 설득력 있다. 금배지는 제 밥그릇을 순순히 뺏기지 않는다. 당이 두쪽 날 각오하고 밀어붙여도, 될까 말까다. 2017년 도로 친박당을 막겠다며 “당 쇄신”을 다짐한 홍준표 대표도 실패하고 물러났다. 조직강화특위에 모셔 “전례 없는 권한”을 줬는데 분란만 키운다며 라이프스타일까지 문제 삼아 문자 해촉을 한 건 볼썽사납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자유한국당에 대한 전 변호사의 진단은 제법 적확하다. 시대를 따라잡지 못해 멸종 위기에 직면해서도 끝내 진화를 포기한 112석 ‘공룡 정당’의 속살을 드러낸다.

“관료, 기업가, 학계, 법조인, 언론인, 어느 정도 사회에서 성공하면 고향에 가 출마해 재선, 3선 한다. 그런 조직을 들어내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국회 수첩만 펼쳐봐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밥 먹을 때면 비슷한 탄식을 한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파가 아니라 사조직인 계파만 작동하는 곳이다.”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무대” “우리 홍 대표” “서 최고가”…. 많은 의원이 김무성, 홍준표, 서청원 등 이른바 실력자를 ‘보스’로 모셨다. 끼리끼리 편 가르고, 공천 때마다 줄 세우고, 싸웠다.

“박근혜 탄핵 끝장 토론이 필요하다.” 박근혜에 대한 처벌이 과했다느니 하면서 원내대표, 당 대표 선거에 활용하고, 쇄신의 칼날을 피할 방패막이로 쓰지 말고 토론으로 끝장을 보는 게 정도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블랙리스트, 사법농단이 정당했는지 따져야 한다. 촛불 집회, 80% 국민이 요구한 탄핵을 어떻게 해야 했는지 토론하고, 갈라설 사람들은 짐을 싸야 한다. 그럴듯한 ‘보수 통합’보다 2년째 이어온 고질적 분란을 정리할 좋은 해법이다. 그 정도 돼야, 보수 적통을 주장할 자격이 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여전히 “혁신”을 다짐한다. 지켜볼 일이지만, 큰 기대는 없다. 그는 힘없는 ‘바지사장’이다. 문자 해촉 파문 이후 사퇴론이 분출한다. 심재철 김진태 유기준 조경태 김문수 정우택 등 이른바 잔류파 중진들은 “반성을 해도 우리가 하고 개혁을 해도 우리가 한다. 엄동설한에도 당을 지킨 보수 적통파는 우리”라며 “무능으로 갈등을 증폭한 김병준 비대위를 끝내자”고 외친다.

김병준 비대위는 계속 머뭇거린다. 지난달 30일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에 의뢰한 ‘한국 보수정당의 위기와 재건’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놓고, 의원총회까지 열었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패배로 존폐 위기에 빠진 당을 살릴 나름의 ‘비책’이 담겼다. ‘자유한국당이 보수 유권자의 분열과 방황을 봉합하기 위해선, 첫째, 냉전 이데올로기에 의존한 낡은 대북·안보 프레임을 버리고 유연하고 실용적인 대북정책 포용, 둘째, 합리성과 효율성에 근거한 건설적이고 차별적인 보수노선의 경제정책 수립, 셋째, 보수의 도덕적 윤리적 가치에 바탕을 둔 주요 사회적 의제를 유권자 사이에 명확히 설정해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당은 거꾸로 간다.

“혁신을 거부하는 정당에 아무 미련이 없으나 보수 정당의 재건은 이미 어려워졌다.” 전 변호사의 이 예측은 들어맞을 것이다. 혁신 없이, 보수 통합을 외치며 간판만 바꿔 달려 할 것이다. 결국 ‘반문재인 연대’의 깃발을 든 그 나물에 그 밥이 될 공산이 크다. 자유한국당이 반복해온 익숙한 패턴이다.

skshin@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