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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기고] 문화계의 논공행상 / 김일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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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지난 10월24일 안산문화재단은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예술감독으로 이광기씨를 위촉했다. 1985년 연기자로 데뷔해 2009년 가수로, 2017년 사진작가로 활동 영역을 넓혀온 이씨는 이로써 문화예술기획자로 새로운 이력을 추가했다. 이씨가 이번에 위촉된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내년에 15회를 맞이하는, 규모 면에서 국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리극축제다. 그런데 이씨의 위촉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거리예술협회는 거리예술가들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의견을 모아 이광기 예술감독의 위촉 철회와 전문예술감독의 위촉을 요구하는 공식성명서를 발표했다.

실제로 이씨의 위촉 과정은 석연치 않다. 예술감독으로서의 역량과 관련해 예술감독 선정 공고문에 명시된 자격조건에는 ‘국제 및 전문단위 축제 및 문화예술 행사 경력’ ‘공연예술 및 축제에 대한 기획력과 추진력’ ‘외국어 구사 능력 및 국제교류 업무 경력’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함께 응모자는 거리극축제에 대한 비전과 추진 방안 등을 기술한 직무수행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씨가 자격요건에 미달하는 건 분명하다. 특히 가장 중요한 ‘행사 경력’과 관련해, 그는 조재현씨가 ‘미투’(나는 고발한다) 운동으로 물러난 ‘디엠제트(DMZ)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 권한대행을 단 석달 동안 맡았을 뿐, 문화예술기획자로서의 이력이 전무하다. 이에 한국거리예술가협회는 안산문화재단에 이씨의 직무수행계획서와 더불어 심사위원 명단과 심사 기준, 심사 내용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재단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1항 5호와 6호를 들어 청구정보 비공개 결정을 통지했다. 윤화섭 안산시장이 취임 한달 만인 지난 8월 이씨를 안산시 관광홍보대사로 위촉한 바 있어 문화예술인들은 이번 예술감독 위촉 또한 시장의 뜻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씨의 사례만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 문화예술계의 또 다른 보은성 인사로 10월4일 취임한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우종 사장이 거론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지방선거 캠프 상황실장을 지낸 이 사장은 문화예술계 경험이나 공공기관 운영 경력이 전무했다. 이에 경기도문화의전당 노동조합은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 지사는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선임과 관련해 노조 쪽으로부터 “경기문화재단이 이재명 낙하산 착륙장이냐”는 강도 높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선거 뒤 논공행상은 분야를 막론하고 벌어진다지만 언제까지 낙하산 인사를 용인해야 하나. 문제 인물의 교체뿐 아니라 인사권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나아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심사 투명성 보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은 재단의 비위 사실 은폐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리고 그 전에 선행될 일이 있다. 공직을 희망하는 응모자는 해당 조직의 구성원과 나아가 그 수혜를 직접 받을 시민들에게 자신의 비전과 직무계획을 알려 점검받을 의무가 있다. 이 검증 과정을 거쳐 구성원과 시민의 지지를 얻었다면 설령 비전문가라도 용인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그런 절차가 없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이 ‘731부대와 과학기술 총력전 체제’(<한겨레> 11월10일치 23면)에서 쓴 표현을 편집해 갈무리하면, ‘시민 모두에게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는 정책들이 시민 배제를 통해 강행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재앙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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