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전원합의체 “청구권협정으로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 안돼”
“신일철주금은 이춘식씨 등 4명에 1억원씩 지급하라” 원심 확정
재상고심 5년 넘게 지연…피해자 3명은 결론 못 보고 세상 떠나
일제 강제징용 생존 피해자 이춘식씨가 30일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휠체어를 탄 채 대법원 청사로 향하고 있다. 소송은 13년 만에 피해자 승소로 확정됐다. 이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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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피해자 ‘승소’로 확정했다. 소송 제기 13년8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씨(94) 등 4명이 일본 철강기업인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신일철주금이 이씨 등에게 각 1억원씩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씨 등은 1941~1944년 일본제철의 오사카 공장 등으로 끌려가 중노동에 시달리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한 뒤 귀국했다. 사망한 여운택·신천수씨는 1997년 손해배상금과 미지급 임금을 달라며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냈지만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쟁점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볼 수 있는지였다.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에 따라 경제협력자금(3억달러 등)을 한국에 준 것에 한국 국민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포함됐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대법원 다수의견(대법관 7명)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에 대해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써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구 일본제철의 조직적 기망에 의해 동원됐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대법원은 일본에서 패소 판결이 확정된 상황에서 한국에서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봤다. 일본 법원의 판결이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강제징용을 했던 구 일본제철과 현재의 신일철주금은 다른 기업이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해줄 수 없다는 신일철주금 측 주장에 대해서도 두 회사는 동일한 회사이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을 선고하기까지 5년 넘게 심리를 끌어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2012년 5월24일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피해자들 승소 취지로 판단했기 때문에 확정만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심리를 지연했다. 그사이 피해자 4명 중 3명이 사망했다. 최근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이 사건을 두고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혜리·박광연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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