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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아직 남은 14건의 유사 소송에서도 피해자들이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우리 법원이 일본에서 강제집행을 할 수 없어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이춘식씨(94)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1997년 일본 재판소에 소송을 낸지 21년만이고, 2005년 한국 법원에 소송을 낸지 13년만이다.
앞서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3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결론을 확정지은 바 있다. 일본에서와 달리 한국에서 정반대 판결이 나오면서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피해자들의 소송이 앞으로도 줄을 이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현재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대법원에 2건, 서울고법에 1건 등 14건이 법원에서 심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쓰비시 중공업, 주식회사 후지코시, 요코하마고무, 스미세키홀딩스(옛 스미토모석탄광업) 등 일본 기업 70개 이상이 소송 당사자로 올라있다. 이번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인해 이들 기업 입장에서 앞으로 패소할 가능성이 커졌다.
대한민국 법원이 신일본제철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피해자들이 실제 손해배상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상대방이 한국이 아닌 일본 기업이어서다. 전문가들은 신일본제철의 국내 재산이 있을 경우 강제집행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수 있지만, 국내 재산이 없다면 강제로 받아내긴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일본 기업이라도 국내에 재산이 있다면 대법원 확정 판결을 가지고 강제 집행을 할 여지가 있지만, 일본에서 강제집행을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 법원의 판결을 일본에서 적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일본 법원에 ‘강제집행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지만 일본 법원이 이미 패소 판결한 건에 대해 이같은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 역시 낮다.
국내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중심이 돼 재단을 설립하고, 과거 일본의 경제지원을 받아 설립된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과 일본 정부 및 기업을 참여시켜 손해배상은 물론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를 하도록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피해자 측을 대리한 김세은 변호사는 "이미 오랜 세월을 살아온 피해자들은 무엇보다도 사과를 받고 싶어한다"며 "먼저 사과를 받고 정당한 보상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강제집행을 하려고 했다면 지난 2013년 고등법원 판결을 기초로 가집행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일본 기업과 논의를 통해 사과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라며 "앞으로의 과정은 아직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판결로 한일 관계가 경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외무성은 우리나라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패소 판결을 확정지을 경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등의 강경 대응 방안을 검토해왔다. 1965년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을 위반한 판결이라는 논리에서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지난 29일 언론 인터뷰에서 "패소를 털끝 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청구권 이야기는 끝난 이야기"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김태은 박보희 기자 tai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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