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피해 배상 문제,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30일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 배상 판결의 핵심 쟁점은 1965년 한·일 협정으로 개인의 배상 청구권이 해결됐는지다. 대법원이 청구권을 인정한다면 한·일 협정 이후 53년 만의 입장 변경이 된다.
정부가 그간강제징용자 개인의 배상 청구권이 이미 소멸했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해온 데는 이유가 있다. 한일 협정 체결 과정에서 이미 해당 문제가 다뤄졌기 때문이다.
2013년 7월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변호인단 등이 판결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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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일본은 징용 피해 개인에 대해 일본 정부가 직접 배상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하지만 한국 측은 “개인에 대해서는 한국 국내에서 처리하겠다. 보상금 지불은 일본으로부터 보상금을 받은 뒤에 한국 안에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라며 국가가 배상금을 받아 피해 국민에게 나눠주겠다고 주장했다. 국제법적으로 통용되는 ‘일괄보상협정(lump-sum settlement)’ 방식이었다. 61년 협상에서 한국은 구체적으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 1명당 200달러, 사망자 1명당 1650달러씩 총 3억 6400만 달러를 책정해 일본에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이 내는 돈의 성격을 두고 양측은 평행선을 달렸다. 식민 지배를 합법으로 보는 일본은 ‘경제 협력 자금’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려 했고, 한국 측은 식민 지배 청산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국교 정상화를 위한 정치적 타결이 이뤄졌고 관련 조약 제목은 ‘재산 및 청구권 문제의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으로 절충됐다.
하지만 협정 1조에서 일본이 3억 달러의 무상공여와 2억 달러의 정부 차관을 제공하기로 하고, 2조에서 청구권 문제가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고 규정하면서 1조와 2조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언급하진 않았다. 일본의 자금 제공이 청구권 해결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정리하지 않고 애매하게 처리된 셈이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5년 노무현 정부가 한·일 협정 교섭 관련 외교문서를 전면 공개하면서다. 노 대통령은 그해 3·1절 기념사에서 “피해자들로서는 국가가 (한·일 협정을 체결하며)국민 개개인의 청구권을 일방적으로 처분한 것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검토를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에 ‘한ㆍ일 회담 문서 공개 민관 공동위원회’가 설치됐다.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와 이용훈 변호사가 공동위원장을 맡아 65년 체결된 청구권 협정의 효력 범위와 이에 따른 정부 대책을 논의했다.
공동위는 같은 해8월 26일 “한ㆍ일 청구권 협정은 일본의 식민 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ㆍ일 양국간 재정적, 민사적 채권ㆍ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나 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 사할린 동포 문제와 원폭 피해자 문제도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에 대한 배상 청구권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서는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 달러는 개인 재산권, 조선총독부 대일채권 등 한국 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 강제징용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됐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에 이들을 구제할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이후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는 한·일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최근 강제징용 관련 재판 거래 수사가 시작되자 “수사중인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적절치 않다”고 입장을 바꿨다.
유지혜·권유진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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