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세계 최대 광고회사 수장에서 물러난 마틴 소럴 WPP 전 회장, 재기에 성공할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마틴 소렐 WPP 전 회장 /사진=매경DB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글로벌 CEO열전-78] 광고업계 전설로 통한 마틴 소럴 전 WPP 회장이 최근 BBC 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의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지난 4월 회사 자금을 유용한 것과 관련해 조사를 받고 불명예 퇴진했다. 비록 여론을 의식해 물러났지만 잘못한 것이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나는 어떤 사죄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실에 입각해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포크스턴과 다트퍼드의 작은 전선과 플라스틱 업체를 인수해 현재 운용하는 자금이 700억달러에 이르고 수입이 200억달러나 되는 기업을 만들었다. 이에 대해 나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나는 사과할 게 없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적극 대응했다. 지난달에는 자신을 '심각하게 잘못된 행동으로 비난받는 불명예스러운 경영자'라고 표현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이의를 제기해 정정 보도를 받아냈다.

소럴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것은 회사 자체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 보름 만이었다. WPP가 자세한 결과를 밝히지 않아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하는 심정으로 사건을 바라봤다. 그럴 만한 단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회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을 보면 갑작스러운 퇴진은 의외였다. WPP를 떠난 뒤 그가 은둔하거나 자성의 시간을 보내지 않고 곧바로 새로운 일을 시작한 것을 보면 자신의 운명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럴 회장은 지난 5월 데리스턴캐피털이라는 회사를 4000만파운드에 인수한 뒤 투자자들로부터 1억5000만파운드를 유치해 S4캐피털을 설립했다. 지금은 작은 투자회사지만 다른 기업들을 인수하고 사업 목적을 바꿔 WPP 같은 창의적인 회사로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S4캐피털은 셸컴퍼니(Shell Company)인 셈이다. 셸컴퍼니는 회사를 인수한 뒤 사업을 바꿔 전혀 다른 기업을 만들 때 활용된다. 사업에 적합한 회사들을 인수해 사업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소럴 회장이 WPP를 키울 때도 같은 전략을 썼다. 그는 최근 디지털 콘텐츠 기업인 '미디어몽크스'를 사들이며 긴 장정의 첫발을 뗐다.

그는 WPP를 통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솜씨를 보였다. 광고회사 최고재무책임자로 앞날이 보장됐던 그는 40세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전선과 플라스틱으로 장바구니를 만드는 회사를 인수했다. 제조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인수한 회사는 셸컴퍼니일 뿐이었다. 그는 사업 목적을 광고로 바꾸고 외형을 불렸다. 인지도는 높지만 실적 부진 등 경영 실패로 저평가된 기업들을 사들이는 전략을 취했다. 자금이 쌓이자 150년의 역사를 가진 제이월터톰프슨(JWT)을 비롯해 오길비와 영앤드루비컴, 그레이, TNS 등 내로라하는 광고 업체들을 인수했다. 이들 기업을 한 지붕 아래 두고 광고주가 최상의 옵션을 선택하도록 했다. 이 전략은 적중했고 시간이 가면서 WPP는 광고업계의 공룡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100개가 넘는 지사와 20만명 이상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용의주도하고 냉정한 성격을 가진 소럴 회장을 데이비드 오길비는 '끔찍한 똥덩어리'라고 폄하했다. 오길비는 광고계에서는 소럴 회장보다 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비록 동료들에게 욕을 먹었지만 광고회사를 복합기업으로 키운 소럴 회장의 업적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의 광고 영업은 새로운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 보급이 확산되고 광고 시장이 모바일 위주로 바뀌면서 오프라인의 '규모의 경제'가 힘을 잃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WPP는 지난해에만 주가가 30% 넘게 떨어졌다.

그는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석유 기업 스탠더드오일은 시장을 독점하다가 해체됐다. 콘텐츠 시장을 장악한 페이스북과 구글도 비슷한 조치가 필요할지 모른다. 이들이 기술 기업인지, 편집 기업인지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온라인 기업들에 밀리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을 이런 말로 털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가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는 꼰대는 전혀 아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요즘 이른 아침 당신을 깨우는 것은 태어난 지 3개월 된 아이가 아니라 아마존이다. 우리는 모바일 혁명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 창의적인 게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S4캐피털을 모바일 시대에 또 다른 스타 기업으로 키울 수 있을까? 70세가 넘은 고령을 극복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 기업인들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재기에 성공해 불명예 퇴진을 잊고 또 다른 신화를 쓰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장박원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