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공정거래위원회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라면 값을 담합한 혐의로 농심, 오뚜기 등 라면업체들에 과징금 1240억 원을 부과했다. 이는 라면업체들이 비상경영에 돌입한 뒤 행정소송으로 대응할 정도로 큰 액수였다. 3년여의 소송 끝에 2016년 1월 대법원은 담합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업체들이 낸 과징금뿐만 아니라 수십억 원의 이자를 더해 환급했다.
이처럼 공정위가 국고로 귀속시켰다가 돌려준 과징금이 최근 4년 반 동안 1조1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가 기업에 거액의 과징금을 매긴 뒤 소송에서 패해 기업과 국민의 부담을 함께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주요 과징금 처분 소송을 자체 직원에게 맡기는 대신 법무법인(로펌)에 의뢰하고 있어 국고가 이중으로 새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과징금 폭탄 매겼다가 세금으로 이자까지 환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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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공정위가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에 낸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7월까지 공정위가 업체들이 낸 행정소송 등에서 패소해 돌려준 과징금 환급액은 1조1190억 원이었다. 이는 과징금 1조305억 원에다 이자 격인 환급가산금 885억 원을 더한 금액이다.
공정위가 이자를 포함해 돌려준 과징금 환급금은 2014년 2446억 원에서 2015년 3438억 원으로 급증한 뒤 2016년 1775억 원으로 감소했다가 2017년 2356억 원으로 다시 늘었다. 올해는 7월까지 환급액만 1173억 원에 이른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과징금 환급금은 공정위가 무리하게 법을 적용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행정조치로 과징금을 부과하면 업체들은 일단 과징금을 내야 하는 구조다. 업체들이 사후적으로 법원에 행정소송을 내고 수년간의 재판 끝에 대법원이 업체들의 손을 들어주면 공정위는 받았던 과징금을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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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올 5월 공정위는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로 롯데쇼핑에 매겼던 과징금을 종전 46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대폭 줄였다. 올 1월 대법원이 공정위의 과징금 산정방식이 잘못됐다고 판결해서다. 지난해 환급된 과징금 중 93.5%는 공정위가 이런 행정소송에서 패소해서 돌려준 돈이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돌려줄 때 원금만 돌려준다면 국고에서 손해 볼 것은 없지만 환급에 따른 이자는 고스란히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무리한 과징금으로 기업은 불공정거래를 했다는 불명예를 떠안고 국가 전체적으로 혈세를 낭비하는 이중의 손실이 생기는 셈이다.
○ 고가의 외부 변호사 선임하고도 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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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기업을 상대로 이기기 힘든 소송의 경우 외부 변호사를 선임한다. 2014∼2018년 7월 공정위의 행정사건 1120건 중 925건(82.6%)은 외부 변호사들에게 맡겼다. 이렇게 지출한 변호사비만 2014년부터 4년 반 동안 101억 원에 이른다. 직접 수행은 195건(17.4%)에 불과했다. 현재 공정위에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직원이 42명이지만 인력난 등을 이유로 외부에 맡기는 비중이 높았다.
문제는 외부 변호사 선임 소송이 직접 소송보다 승소율이 낮다는 점이다. 외부 변호사를 선임한 소송에서 공정위가 100% 이긴 ‘전부 승소’ 비율은 64.1%에 그쳤다.
공정위는 과징금 액수가 크거나 법리 다툼의 여지가 많은 사건은 외부 변호사를 선임하고 비교적 간단한 소송은 내부 직원을 통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2015년 과징금 34억 원을 부과한 건설사 담합 사건은 공정위 내부 직원이 맡아 승소한 반면, 같은 해 2500만 원의 과징금을 매긴 하도급 위반 사건에서는 외부 로펌을 선임하고도 패소했다.
이 의원은 “공정위가 외부 로펌 선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며 “변호사 선임 비용도 모두 세금으로 충당되는 만큼 승소로 확정 판결난 소송에 대해 정밀히 분석해 직접 소송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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