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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카쇼기 사건 후폭풍, ‘사막의 다보스’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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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모하메드 빈 살만(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해 10월 24일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행사에 참석해 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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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 권력으로서 명실공히 권력을 쥔 모하메드 빈 살만 알사우드(33) 왕세자가 내놓은 ‘비전 2030’은 석유 의존도가 높고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사우디를 더 근대화된 국가로 만들려는 계획이다. 2017년 10월 리야드에서 처음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는 그 홍보의 장으로 손색이 없는 행사였다.

사우디는 이 행사를 통해 미래형 도시 ‘네옴(NEOM)’ 개발 계획을 발표했고, 행사에 참여한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에게는 사우디 시민권을 부여하는 등 미디어에 회자될 만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언론은 FII에 ‘사막의 다보스’라는 별칭을 붙였다. 매년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을 연상시킬 만큼 각국의 지도자급 인사와 기업인, 투자자를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는 23일부터 열리는 FII 2회차는 파행 위기에 놓였다. 사우디 출신 베테랑 언론인 자말 카쇼기가 터키 이스탄불 사우디 영사관에서 실종됐고, 그가 고문 끝에 살해됐다는 잠정적인 수사 결론까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서구를 중심으로 사우디 정부를 둘러싼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고, 투자자와 기업인, 언론 등이 일제히 행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기 시작했다.

세계은행 관계자는 1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FII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총재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함께 FII 주요 연사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있었다. 라가르드 총재 역시 참석이 불투명하다. 현재 FII 홈페이지에는 2018년 참석자 명단이 잠정 삭제된 상태다.

이외에 불참 의사를 밝힌 인사로는 우버의 다라 코스로샤히 최고경영자, 바이아컴의 로버트 배키시 최고경영자, AOL 설립자 스티브 케이스, 전직 안드로이드 플랫폼 총책임자 앤디 루빈 등이 있다. 또 버진그룹 설립자 리처드 브랜슨은 사우디 국부펀드의 버진그룹 내 우주개발 분야에 대한 10억달러 투자 논의를 중단했다.

미디어 파트너들도 대거 불참 의사를 표시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과 CNNㆍCNBC방송, 일간지 뉴욕타임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이 행사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들 언론사 소속 직원 일부는 몇몇 토론의 사회자를 맡을 예정이었다. LA타임스를 인수한 패트릭 순시옹 회장과 허핑턴포스트의 창립자 아리아나 허핑턴도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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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보안 담당 직원이 문을 나서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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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과 ‘비전 펀드’를 운영하는 소프트뱅크의 손 마사요시(孫正義ㆍ손정의) 회장 등은 참석 입장을 바꾸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운용하는 대형펀드는 사우디 국부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가 관여하고 있다. 손 회장의 비전 펀드로부터 큰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대표들도 행사에 참여한다. 사우디 독일 지멘스의 조 카이저 회장과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역시 당장은 참석 계획에 변경이 없다고 밝혔다. ‘사우디 펀드’의 힘이 여전함이 드러난다.

미국에서는 이미 양당 상원의원을 비롯한 정치권이 사우디와의 관계 재설정, 무기 수출 중단, 제재 등을 거론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카쇼기 살인 의혹 사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사우디는 우리 무기를 사기 위해 1,100억달러를 사용한다”라며 무기 수출에 제동을 걸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란 봉쇄의 핵심 파트너인 사우디와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의 중동 정책을 이끄는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은 모하메드 왕세자와 끈끈한 관계다.

터키 당국은 아직까지 카쇼기가 살해당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않고 있지만,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11일 터키 수사당국이 카쇼기가 살해당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영상ㆍ음성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의혹 보도에 대응하기 위해 사우디 정부는 앙카라로 대표단을 파견해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실종 상태인 카쇼기에 대한 공동 조사에 참여토록 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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