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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조종사의 비행훈련을 가로막는 3가지 장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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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파일럿 도전기-75] 파일럿을 꿈꾸는 예비조종사의 첫 단계는 자신이 속한 비행학교에서 비행훈련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연하지만 독학이나 온라인 강의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무조건 현장에 가서 비행기를 직접 몰아야 하는데, 'XX주 속성반'처럼 하고 싶어도 이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자동차 운전면허도 그러한데 하물며 비행면허는 오죽하겠는가. 여기에 학생 입장에서는 빨리빨리 비행훈련을 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게 만드는 암초들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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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날씨

그날의 비행을 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비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상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그날의 날씨가 안 좋으면 하고 싶어도 비행을 못 한다. 비가 와도 안 되고, 눈이 와도 안 되고, 기온이 너무 낮아도 안 된다. 반대로 기온이 너무 높아서 40도 이상이어도 안 된다. 안개가 껴도 안 되고 구름이 많이 끼거나 낮게 깔려도 안 된다. 바람도 중요한 요소인데 교관이랑 같이 탑승할 때는 20knots 이상이어도 안 되고, 솔로비행할 땐 5knots 이상만 되어도 그날의 훈련을 취소해야 한다.

날씨 기준이 매우 까다로운 원인은 비행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학생조종사들 입장에서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또한 대형 비행기도 기상영향을 받는 마당에 소형 비행기라면 더욱 예민하게 기상의 영향을 받는 이유도 있다. 그렇기에 주로 조종사들은 METAR(Meteorological Terminal Aviation Routine Weather Report)와 TAF(Terminal Aerodrome Forecast)를 확인하여 그날 비행 가능 여부를 먼저 체크한다.

날씨 문제는 사실 우리나라가 비행훈련하기에 그다지 좋지 않은 환경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사계절이라고들 하지만, 미칠 듯이 더운 여름과 사무치게 추운 겨울이 일년 중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여기에 쏟아지는 장마에 휘몰아치는 태풍에 사시사철 비도 자주 내리는 혹독한 날씨를 가졌기 때문이다. 일년 내내 맑은 공기에 날씨도 화창한 미국 플로리다주나 캘리포니아주 혹은 남유럽 부근에 유명한 비행학교가 몰려 있는 것이 괜히 그런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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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행기

비행훈련을 받을 때는 그 학교 소속의 비행기를 해당 시간 동안 임차해서 훈련을 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자동차와 달리 비행기는 소형 비행기라 할지라도 몇억 원이 넘고 정비 관리에도 전문인력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학교마다 꼭 필요한 대수만 보유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가끔씩 내가 타기로 예정돼 있는 비행기에 갑자기 문제가 생기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날 비행이 뜻하지 않게 취소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하진 않지만 여기에도 여러 이유들이 있다. 갑자기 비행기에 내장된 배터리가 방전될 때도 있고, 엔진에 문제가 생겨 시동이 안 걸릴 때도 있고, 내 차례 전에 비행훈련을 마친 학생이 비행기를 심하게 다뤄서 망가지는 경우도 가끔 생긴다. 예를 들어 착륙할 때 가뿐하고 가볍게 해야 하는데 쿵쾅거리면서 '하드랜딩(Hard landing)'을 하게 되면 비행기에 무리가 가는데 이것이 심해지면 비행기를 망가뜨리게 되는 것이다.

안전에 관해서는 아무리 지나쳐도 모자람이 없기 때문에 모든 조종사들은 비행훈련 전 '비행 전 검사(Pre-Flight Inspection)'를 하게 되어 있다. 비행마다 출발 전에 항공기 전체에 대한 외관 점검, 연료 보급, 출발 태세의 확인 등을 실시하는 것을 뜻한다. 이때 만약 자신이 탈 비행기에 결함을 발견하게 되면 바로 교관과 상의해서 비행을 취소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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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람

마지막은 사람 문제다. 비행교관이 무한동력 로봇이면 모르겠는데 아직까지는 사람이고 배우는 학생도 사람이기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역시 다양한 케이스들이 있다. 갑자기 교관이 몸이 아파서 병가를 내는 경우도 있고, 학생이 아파서 병가를 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갑자기 복통이 심하게 온다든가 열이 많아진다든가 병에 걸리면 비행이 문제가 아니다. 혹은 교관이 휴가를 가거나 쉬는 날이라면 이 또한 아무리 날씨가 아름답고 비행기가 좋아도 비행을 못 한다.

만약 내 훈련 담당 메인교관이 여름휴가·겨울휴가처럼 1~2주 이상 자리를 비운다면 어떻게 될까. 교관 숫자가 넉넉하고 대체교관이 있는 경우에는 다행이겠지만, 대체적으로 요즘 세계적으로 항공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해서 비행학교마다 교관 수요에 목이 말랐기 때문에 운이 없으면 비행을 하고 싶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서 못 하는 눈물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마치 기독교에서의 '삼위일체론'처럼 비행훈련도 '날씨-비행기-사람'의 3박자가 꼭 맞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니, 하루하루 주어지는 소명 아래 그날의 비행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하루인 것이다. 몇 가지 예측 가능한 것을 빼놓고는 거의 다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니 '범사에 감사함을 강요하는 삶'이란 게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Flying Johan/john.won3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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