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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기술탈취 분쟁 백태-제3기업에 기밀 빼돌려 납품단가 압박 계약 일방 해지 뒤 내재化 억지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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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소기업 간 기술탈취를 둘러싼 분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6년 중소기업청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644개 업체가 기술탈취 피해를 경험했고 연평균 피해액은 3456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최근 열린 ‘대기업 기술탈취 피해 사례 발표와 근절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소개된 분쟁 사례를 중심으로 갑을관계 기반 기술탈취, 기술설명회 악용, 계약 해지 후 동일 상품 개발 등 3가지 유형을 들여다봤다.

매경이코노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술탈취와 납품 단가 후려치기 문제에 관해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 중이다. <매경DB>


▶갑을 기반 권력형 기술탈취

▷기술 뺏은 뒤 수주 배제

가장 흔한 유형은 갑을관계를 악용해 노골적으로 기술을 탈취하는 케이스다. 최근 불거진 삼영기계와 현대중공업 간 갈등이 이런 경우다.

현대중공업에 실린더 헤드와 피스톤 등을 납품하는 삼영기계는 현대중공업과 기술탈취를 둘러싼 분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 회사는 최근 3년 동안 기술탈취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을 편다. 삼영기계에 따르면 삼영기계는 현대중공업 요구로 중요한 기술 노하우를 총망라한 자료를 현대중공업에 제출했다. 현대중공업이 요청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양산 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며 제출을 강요했다는 것이 삼영기계 측 주장이다. 한국현 삼영기계 대표는 “현대중공업이 핵심 기술을 전수받은 이후 삼영기계 발주량을 급격히 줄이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실제 2014년 203억원에 달하던 현대중공업과의 거래액은 지난해 22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이에 대해 기술탈취 당사자로 지목된 현대중공업 측은 적극 반박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생산 환경 변화에 따라 품질 문제를 파악하려 했던 것이며 납품업체 기술탈취를 목적으로 자료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두산인프라코어도 비슷한 경우다. 이 회사는 납품 단가를 낮추기 위해 중소기업의 기술을 다른 회사에 빼돌린 혐의로 수억원 과징금을 물고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됐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을 선언한 이후 첫 처벌 사례다.

공정위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는 2015년 말 ‘에어콤프레셔(압축공기를 분출하는 굴삭기 장착 장비)’ 납품업체인 ‘이노코퍼레이션’에 납품 가격을 18% 낮춰줄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두산인프라코어는 다른 업체에 핵심 부품 제작 용접·도장 방법, 부품 결합 위치 등 기밀이 담긴 제작도면 총 31장을 2016년 3월부터 지난해 7월 사이 5차례 전달해 같은 제품을 개발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이후 도면을 넘겨받은 업체가 납품을 시작하자 이노코퍼레이션은 수주에서 배제됐고 납품 단가 역시 최대 10% 낮아졌다는 것이 공정위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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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설명회서 듣고 경쟁사에 귀띔

▷납품 단가 인하 경쟁 유도

기술설명회나 브리핑을 악용하는 경우도 흔한 탈취 유형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국내에서 독보적인 레이저 기술을 갖고 있는 A사 대표는 제품을 납품하는 대기업으로부터 기술 진척 상황을 알고 싶다며 브리핑 요구를 받았다. A사 대표는 납품 기업에 들어가 설계도면과 향후 기술 개발 방향 등에 대해 브리핑했다. 발표 당시 반응이 고무적이었다. 당장이라도 발주를 넣을 듯했다. 그런데 결과는 딴판이었다. 몇 개월 뒤 신규 생산라인 증설 때 이 회사는 배제됐다. 기술 수준이 한 단계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던 경쟁사에 관련 기술 동향을 알려준 뒤 일감을 몰아줬다는 소문이 돌았다.

A사 대표는 “수출처가 다변화돼 있다 보니 당시 업계에서 우리 회사에 대해 ‘대기업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뒷얘기가 많았다. 경쟁사를 키워주려 한다는 얘기가 돌기는 했어도 기술력이 있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그저 억울하고 황당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이렇듯 비대칭적인 대·중소기업 구조 아래서 기술설명회는 마음만 먹으면 오용될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 현실이다. 앞서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기술탈취 논란에 휘말렸을 때도 기술설명회가 발단이 됐다. 현대차는 지난 2015년 협력사였던 비제이씨와 중소기업인 오엔씨엔지니어링과 기술탈취 분쟁에 휘말렸다. 현대중공업은 2013년쯤 선박 구성품을 제조하는 테크마레와 기술탈취 논란에 휘말렸고 양측의 갈등은 법정 싸움으로까지 번진 끝에 2015년 극적인 합의를 봤다.

당시 중소기업들은 “설명회에서 제공한 제품 샘플과 기술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던 반면,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측은 “설명회에서 기밀 공개를 요구한 적 없다”며 팽팽히 맞섰다.

▶계약 해지 후 동일 상품 개발

▷“이미 개발 진행 중이었다” 강변

특정 제품에 대한 공급계약을 체결한 뒤 이를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내부적으로 자체 생산하는 방식도 흔히 나타난다.

창업투자회사 에스네트워크와 신세계아이앤씨 간 분쟁이 이런 사례다. 모바일 상품권 시스템과 운영 방법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던 에스네트워크는 2013년 신세계아이앤씨로부터 특허 사용 대가로 2000만원을 지급받은 뒤 2014년부터 신세계아이앤씨와 영업대행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신세계아이앤씨는 모바일 상품권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양측은 이후 영업대행 재계약과 'SSG페이' 유사성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에스네트워크 측은 "2015년 초 신세계아이앤씨로부터 일방적으로 모바일 상품권 영업대행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고 이후 4개월 뒤 모바일 상품권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 'SSG페이'를 내놨다. 특허 감정을 통해 'SSG페이'가 자사 기술과 유사하다는 점을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아이앤씨 측은 "영업대행 재계약 기간을 두고 양사간 협의가 되지 않아 재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2015년 상반기 모바일상품권 사업이 종료됐던 것으로 'SSG페이'가 종전 모바일상품권과 다르다는 것에 대해 변리사 감정을 통해 밝혀냈다"고 반박했다. 또 "이후 에스네트워크와 온라인 광고 계약을 체결했지만 에스네트워크가 중대한 계약위반을 해 계약을 해지하였던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측간 갈등은 결국 법정공방으로 이어졌다. 법원에서는 에스네트워크가 계약 해지 사유에 해당하는 중대한 계약 위반을 하였기에 신세계아이앤씨가 에스네트워크에 배상할 손해가 없다고 판결을 내려 갈등은 가까스로 일단락됐다.

정부·공공기관도 기술탈취?

유사 기술 그대로 구현…中企 고사할 판

기술탈취와 모방 논란은 비단 민간 기업에 국한된 이슈는 아니다. 정부와 공공기관도 유사 논란이 끊이지를 않는다. 사기 정보 공유 사이트 ‘더치트’는 경찰청과 기술 모방 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더치트는 2006년 개설된 금융사기 방지 플랫폼 서비스다. 통신사와 연계해 전화 수신 때 사기 이력 정보를 제공하거나 은행과 연계해 이체 거래 때 사기주의 정보를 제공한다. 김화랑 더치트 대표는 “경찰청이 유사 서비스를 2010년부터 제공하고 있다. 경찰청이 더치트의 데이터베이스와 사업 모델을 이용해 서비스를 개발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주장을 폈다. 사기 피해자 사례를 실시간 데이터베이스화해 공유하는 것이 더치트의 핵심 아이디어인데 경찰청이 관련 아이디어와 서비스를 거의 그대로 모방했다는 것이 김 대표의 판단이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사기 이력 전화번호 검색은 인터넷 기본 구조인 정보 검색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기능”이라며 “개인정보보호법 등 법률에 따라 협력 방안을 강구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 역시 논란에 휘말렸다. 금감원은 2016년부터 금융기관 한 곳에서 주소를 변경하면 거래하는 모든 금융사에 등록된 주소가 한꺼번에 바뀌는 ‘금융주소 한번에’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문제는 중소기업 짚코드가 1999년부터 17년 동안 같은 서비스를 제공해왔다며 돌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짚코드 측은 “우월적 위치에 있는 금감원이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면 생존 기반을 잃게 된다”고 주장했다. 금감원 측은 “짚코드가 금융권 외 분야에서 특화할 수 있도록 상생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78호 (2018.10.10~10.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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