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5 (토)

대기업-협력사 ‘윈윈’ 사례-“이유 없이 기술자료 요구 안돼” 시스템化 신기술 R&D 지원하고 장기 계약 보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가 심각하지만 협력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기업도 상당수다. 이들은 자사 직원이 기술탈취를 목적으로 하도급 업체와 접촉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기술탈취 근절을 위해 다방면으로 힘쓴다. 협력사가 신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대기업도 많다.

매경이코노미

“이유 없이 기술자료 요구 안돼” 시스템化 신기술 R&D 지원하고 장기 계약 보장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타당한 이유 없이 자료 요청 불가

▷LGD, 기술탈취 시 징계위 회부

LG디스플레이는 지난 2012년 ‘하도급 협력사 기술자료 요구서 시스템’을 구축했다. 자사 직원이 합당한 이유 없이 협력사에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것을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하도급 업체 기술자료를 받으려면 LG디스플레이 임직원은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자료를 요청하는 이유 등을 설명하는 ‘기술요구서’부터 작성해야 한다. 이유가 타당한지 내부 확인을 거친 뒤 기술요구서를 협력사에 전달하면 협력사는 동의·거절 여부를 결정한다. 해당 프로그램은 임직원과 하도급 업체로부터 호평을 받아 현재 LG디스플레이 외에도 LG그룹 계열사 7곳에서 쓰인다. 기술요구서를 거치지 않고 이메일을 통해 정보를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메일 시스템도 개편했다. 메일 받는 사람 주소에 협력사 도메인이 포함돼 있으면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라는 내용을 담은 경고창을 띄운다.

올해 4월부터 6월까지는 기술탈취, 부당특약 등 ‘갑질’을 근절하기 위한 강연을 열었다. 사내 변호사를 비롯한 내부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서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등 관련법을 설명했다. 아울러 신고 접수와 내부 모니터링으로 기술탈취 같은 갑질을 일삼는 직원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엄중하게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구매나 개발, 외주 등 협력사를 주로 상대하는 부서에 속한 임직원은 이 강연을 필수로 들어야 했고 총 7000여명이 교육받았다.

협력사가 LG디스플레이 외 다른 대기업에 기술을 뺏기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일례로 2014년부터 LCD 부문 협력사 20여개에 기술 보안 관련 교육을 제공해왔다. 지난해 11월부터는 OLED 부문 협력사에도 보안 교육을 시작했다. LG디스플레이와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소속 보안 전문가가 협력사 기술 보안 수준을 진단한 뒤 각 사에 적합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주성엔지니어링과 인베니아를 포함한 6개 회사가 이 교육을 받고 있다.

현대건설기계 역시 ‘표준기술자료요구서’를 자체 시스템에 접목했다. 표준기술자료요구서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제공하는 문서로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목적, 비밀유지 방법 등을 담는다. 현대건설기계 관계자는 “기술 관련 부서 임직원은 해당 시스템을 통해서만 협력사에 기술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핵심인 서약서를 작성한다. 다른 방식으로 기술을 요구하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경이코노미

포스코 임원동반성장지원단이 협력사를 방문해 기술 지원 컨설팅 활동을 하는 모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R&D 비용·공간 지원에 적극

▷SKT 티오픈랩, 1000개 협력사 혜택

협력사 기술 개발을 적극 돕는 대기업도 여럿이다.

SK텔레콤은 2012년부터 연구개발(R&D) 공간 ‘티오픈랩(T Open Lab)’을 협력사에 개방했다. 협력사는 이곳에 준비된 스마트폰 단말기, 통신용 계측기 등을 이용해 기술을 개발하고 시험해볼 수 있다. 매년 1000여개 중소기업이 티오픈랩에서 약 1만3000시간을 머무르며 신기술 개발에 매진한다. 이 밖에 SKT는 보유한 특허 중 1000건을 협력사에 무상으로 제공한다. 일부 기술 API도 협력사에 유·무상으로 개방하고 있다. SKT 이외 SK C&C, SK플래닛 등 SK그룹 계열사 다수가 보유한 특허기술 일부를 협력사에 무료로 제공한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관련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반도체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올해 4월 문을 연 지식 공유 포털이다. 협력사는 가입만 하면 120여개 온라인 교육 과정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7월 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반도체 아카데미 2.0’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이전 반도체 아카데미는 SK하이닉스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제공하는 개념이었다. 2.0은 SK하이닉스와 협력사가 각자의 노하우를 쌍방향으로 공유하는 방식이다.

포스코 역시 협력사가 기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2009년부터 ‘민관 공동투자 기술개발사업’을 진행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포스코가 공동으로 기금을 모아 중소 협력사 R&D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일정 기간 동안 포스코가 제품 구매를 보장한다. 2009년부터 포스코가 지금까지 정부와 공동으로 집행한 R&D 지원금액은 155억원. 협력사가 개발한 기술을 포스코가 구매하고 지불한 대금은 634억원이다.

제철 압연설비·선박 엔진 부품을 만드는 한스코는 포스코의 민관 공동투자 기술개발사업을 통해 수혜를 본 대표적인 기업이다. 포스코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메탈 베어링 생산기술을 개발했다. 메탈 베어링은 제철소 생산설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 과거에는 국내에 메탈 베어링을 생산하는 업체가 없어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포스코는 메탈 베어링 국산화를 위해 한스코에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민관 공동투자 기술개발사업을 통해 15개월간 진행된 연구비를 지원했다. 개발 막바지에는 메탈 베어링을 제철소 현장에 투입해 9개월간 시용하는 과정을 거쳤다. 2016년 개발 과제를 마친 후 3년간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정창근 한스코 사장은 “포스코 소속 전문가로부터 자문받고 포스코가 보유한 생산 라인에 한스코 제품을 적용해 테스트를 할 수 있던 것이 크게 도움이 됐다. 개발에 성공하면 포스코에 일정 기간 동안 공급이 보장되는 만큼 판로 확보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고 말했다.

포스코건설도 협력사와의 상생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최근 보유 특허 총 569건 중 97건을 무상으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전되는 특허에는 수생식물 성장을 촉진해 습지 수질을 정화하는 기술, 비가 많이 올 때 빗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 등이 포함됐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특허를 무상 양도할 계획”이라 전했다.

현대모비스 또한 하도급 업체가 자금, 역량 부족 등으로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어려운 기술을 함께 연구한다. 특허 160개도 비용 없이 제공한다. 중국에서는 시험 장비 130여개를 갖춘 상하이 시험센터를 협력사에 개방했다. 협력사는 이곳에서 시중 대비 절반 이하 비용으로 제품을 시험할 수 있다. 지난 3년간 협력사가 상하이 시험센터에서 진행한 테스트는 7만4000건가량이다.

이 밖에 최근 삼성전자는 협력사에 특허 2만7000여건을 개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에스원도 보안 관련 특허 450여건을 협력사가 무상으로 쓸 수 있도록 오픈할 계획이다.

선진국은 어떻게 방지하나

美 실손해액의 3배까지 벌금 부과A

선진국은 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영업비밀이 유출되는 것을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한다.

미국은 지난해 5월 ‘영업비밀방어법’을 연방법으로 제정했다. 이로써 개별 주마다 상이했던 영업비밀보호 규정이 통일됐다. 피해자는 주 법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됐다. 처벌 수위도 높아졌다. 기존에는 최대 500만달러까지만 벌금을 매길 수 있었다. 현재는 기술유출 실손해액 최대 3배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2016년 기업 영업비밀 정의와 불법행위 범위, 구제 수단 등을 규정한 ‘영업비밀 지침(Trade Secrets Directive)’을 유럽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일본도 지난 2015년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해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영업비밀 침해 유형을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했다. 기술을 탈취한 개인에게 매기는 벌금을 기존 최고 1000만엔에서 최대 2000만엔으로, 법인에 부과하는 벌금은 최고 3억엔에서 5억엔으로 올렸다.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78호 (2018.10.10~10.1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