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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영게울림은 4·3 원혼이 빙의해 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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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자 김성례 서강대 교수

“한국무교, 미신 아닌 종교체계”

심방 생애구술…4·3 해원과 치유


한겨레

한국 무교의 문화인류학

김성례 지음/소나무·3만5000원

한겨레

2018년 4월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 앞에서 펼쳐진 4·3해원상생큰굿에서 서순실 심방(맨 오른쪽)이 사설을 읊어나가자 유족들이 흐느끼고 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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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을 할 때 심방이 우는 것 같아도 영혼이 우는 거다.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지 말하는 거다(…) 막 가슴이 답답하고 내뱉고 싶은 말이 있어. 어떻게 이 사람이 죽었습니까 물어보면, 굿하는 집 본주가 그 사람 칼 맞아 죽었수다 하고 말한다.”

1993년 제주도 심방(무당의 제주 방언) 미조가 문화인류학자 김성례 서강대 교수(당시는 강원대 조교수)의 구술생애사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구천을 떠돌다 심방의 몸을 빌려 한을 쏟아낸 망자는 ‘제주 4·3’의 희생자였다. 이처럼 심방이 원혼의 혼령에 빙의돼 통곡하는 걸 제주 무속용어로 ‘영게울림’이라고 한다.

김성례 교수는 신간 <한국 무교의 문화인류학>에서 우리의 무속을 원시적 기복신앙을 넘어 “지금 여기에서 생성되고 있는 현대적 종교 현상”으로 규정하고, 그 현재적 의미를 탐구한다. “미신과 전통이 근대화 이행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고 근대성의 이면에서 현대 한국인의 일상세계에서 작동하고 있다면, 그 정당한 문화적 창조의 기능을 달리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지은이는 먼저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무교는 무엇인가? 무교는 무엇을 하는가?

첫번째 질문은 무교(巫敎)를 정의하고 개념화하는 분석틀에 관한 것이다. 지은이는 무교를 단지 무속, 자연종교(샤머니즘), 민간신앙, 민속문화 정도로 치부하는 건 무교의 온전한 이해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무교는 ‘신들림’을 연행하는 무교일 뿐 아니라, 일상의 문제를 상담하는 단골 신도, 이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합심해 기도하고 제물을 바치는 대상인 신령들까지 나름의 체계를 갖추고 정기적인 제의가 치러지는 종교 현상이라는 것.

앞서 <성과 속>(1959)으로 유명한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샤머니즘을 “고대의 망아경(忘我境) 기술, 즉 인간과 신령이 소통하는 엑스터시 기술”로 봤다. 샤머니즘의 퍼포먼스 성격을 강조한 것. 그러나 김 교수는 “동북 시베리아 지역의 샤머니즘은 불교나 다른 종교의 영향 아래 발전한 역사적 현상”이라며 “지금까지 자명한 것으로 인식돼온 민족적·민속적 신앙으로서의 한국 무교의 위상을 한국의 특수한 역사와 문화의 맥락에서 성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제주도 무교 현상’과 제주 4·3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역사적으로 제주는 한반도의 중앙집권 국가체제에 속하면서도 지정학적으로는 한반도의 변방에 머물렀다. 제주의 무교는 그렇게 “섬이라는 독립적 지리 조건에서 생성된 독자적인 문화와 제주공동체의 표상”이 됐다. 제주 무교의 ‘주변부’ 인식은 1948년 4월 제주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의 폭력 경험과 트라우마 기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주 심방들은 굿을 의뢰하는 사람이 오기 전에 미리 선몽을 꾼다고 한다. 꿈에서 누군가 창에 찔리고 총에 맞아 피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굿에서는 심방에게 실린 영혼이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는 넋두리, 영게울림을 했다. 이른바 ‘4·3 내력굿’이다. 제주에서 바다의 평온과 풍어를 기원하는 칠머리당굿이 1980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공공연한 굿 연행을 할 수 있기 전까지, 제주에선 4·3 당시의 죽음을 입에 담기는커녕 “영게울림, 즉 영혼의 울음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김 교수는 “특히 폭도로 몰려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조차 꺼리는 제주 사람들의 공포심은 4·3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 진실’에서 연유한다”고 지적한다. 친일과 친미 반공에 뿌리를 둔 과거 정권들은 4·3을 “좌익세력의 무장봉기”로 기록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2000년에 제정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선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해 이념적 색깔을 지웠다.

담론 권력을 쥔 지배층과 실제 제주 사람들의 인식 사이에 놓인 골은 아득하게 깊다. 이 대목에서 두 번째 질문, 즉 한국의 무교는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답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김 교수는 “4·3사건의 민중기억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무교 의례에는 그것을 억누르는 정치체계에 대항하는 또 다른 저항의 힘이 잠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희생자의 무고한 죽음을 ‘칼 맞아 죽은 몸’의 형상으로 고발하고 생존자의 고통을 증언하는 것은 반공사회의 질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폭력에 대한 저항’이며, 종국에는 반공 정치의 폭력적 구조를 와해시키고 산 자와 죽은 자를 모두 해원하고 치유하는 구원의 담론이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제주도 무교 현상’을 연구하면서 현지 심방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채록하는 생애구술사와 서사 분석을 활용한 것도 주목된다. “구술사는 엘리트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침묵되어진 사적인 삶의 경험을 반영”하며, 특히 “여성주의 구술사는 가부장제 체제의 전복을 꾀하는 담론 정치의 장”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제주 동북 해안마을의 무당 문심방은 자신의 이야기를 끝내면서 단호하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 죽어도 썩지 않을 거우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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