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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신을 만나 "은퇴 후 어떻게 살까요" 물으니 그 대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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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18)
일전에 어느 금융회사의 은퇴연구소장이 찾아 왔다. 차를 한잔하며 후반생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가 갑자기 겸연쩍어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여기저기 다니며 은퇴준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강의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스스로 은퇴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은퇴전문가라는 사람이 그런 고백을 해서 좀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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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은퇴연구소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은퇴준비에 대해 강의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은퇴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말한 이야기를 듣고 좀 놀랐다. [사진 px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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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어디 그뿐인가. 나도 그렇다. 오랫동안 은퇴를 준비했어도 요즘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먼저 살았던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도 한 방법인지라 자료를 찾아보았다. 얼마 전 세상을 등진 중국의 원로 정치가 완리가 생전에 한 말이다. "나이가 들어선 세상사에 관여하지 말고, 듣지도 말며, 일을 벌이지도 말라."

실제로 그는 은퇴 후 일체의 사회활동을 중지하고 가까운 지인들과 소일하며 지냈다. 그의 이런 행동은 공자의 이념에 바탕을 둔 것 같다. 공자는 말년에 4가지 마음을 끊었다고 한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마음.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마음. 고집을 부리는 마음.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마음.'

장자도 거들었다. "성인은 꼭 해야 할 일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에 다툼이 없지만, 세상 사람은 꼭 해야 할 일도 아닌 것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다툼이 많은 것이다. 마음속에 다툼을 따르기 때문에 그 행동에는 구하는 것이 있고, 마음속의 다툼이 그 구하는 것을 믿으면 본성은 곧 망하고 마는 것이다." 공자나 장자의 조언에 의하면 인생 2막이라고 해서 꼭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 2막을 고민하기는 젊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기자들이 가톨릭의 장익 주교를 인터뷰하다가 말미에 젊은이를 위하여 한 말씀 해달라고 청탁을 했다. 장 주교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잠시 후 어느 스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겠다며 이렇게 답했다. "그냥 살아."

장 주교가 지칭한 어느 스님은 조계종 종정을 역임했던 서암 홍근 스님이다. 스님이 돌아가실 때 제자들에게 남긴 게송이 바로 그 말이다. 13세기 가톨릭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도 그랬다. 에크하르트가 쓴 책을 보니 그 역시 신자들에게 같은 얘기를 전했다. 종교는 달라도 진리는 같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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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왕조의 길가메시상. 길가메시는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보고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인간이 죽지 않는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신을 찾아간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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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훨씬 전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답을 준 사람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에 살았던 수메르 왕조의 길가메시다. 길가메시는 우루크의 왕으로서 온갖 부를 누리다가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보고 그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인간이 죽지 않는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신을 찾아간다.

길가메시는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가까스로 신을 만났다. 그러나 신은 길가메시가 찾는 그런 방법은 없다고 답한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신은 실망에 빠진 그를 달래며 인간세계로 돌아가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언을 해주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렇다고 절망해서는 안 된다. 의기소침해서도 안 된다.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저 그냥 그렇게 살라."

기록을 보면 우리 이전에 먼저 살았던 사람들도 같은 문제로 고민했음을 알 수 있다. 동서양의 선인들이 준 답은 거의 유사하다. 그저 큰 욕심 부리지 말고 그냥 살라는 것이다.

최근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을 위하여 매체에서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물론 개중에는 좋은 정보도 있다. 그러나 자라온 환경이라든가 생활방식,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은퇴준비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정형화된 답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소위 은퇴전문가라는 사람의 말에 너무 휘둘리지 않았으면 한다. 먼저 살았던 선인들이 알려준 대로 꼭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신만의 인생 2막을 잘 가꾸어갈 일이다.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manjo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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