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정부 정책을 점검하고 시정하는 20대 국정감사가 10일 막을 올렸다. 여상규 국회 법사위원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에서 국정감사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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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 불러 책상 치며 호통...민생 보듬는 정책국감 돼야
[더팩트ㅣ김민구 기자] 제 20대 국정감사(국감)가 10일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 이날부터 29일까지 열리는 국감은 14개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734개 피감기관을 상대로 진행한다. 누군가는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는 계절이 온 것이다.
국감은 ‘삼권분립’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입법부인 국회가 행정부 업무를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국회가 행정부의 정책 활동 전반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자리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본래 취지가 퇴색된 국감이 국민들 앞에서 예능과 다큐멘터리가 뒤섞인 ‘리얼리티쇼’로 변한 지 오래다. 행정부 견제보다는 국감 증인을 희화화하고 카메라를 의식한 정치적 쇼맨십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국감에서 눈에 띄는 ‘증인’ 도 이제는 식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거의 매년 불려나오는 증인들이 대부분 대기업 총수들이다. 대기업 총수들은 어렵게 시간을 낸 국감에서 평균 15시간 정도 대기하고 10분 정도 대답한 후 집에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다. 전 세계에 해외 지사를 설립하고 글로벌 무대에서 촌음을 다투며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이들에게 국감 증인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국감 현장은 정부 정책 점검보다는 막말과 인신공격성 발언이 난무하는 혼돈의 지경이다. 경제발전과 사실상 담을 쌓은 여의도 정객들이 대기업 총수를 한 지리에 모아놓고 책상을 치며 호통치는 모습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도하지 않았는가. 오죽했으면 ‘호통 국감’이라는 말이 다 나왔겠는가.
어디 이것 뿐 이겠는가. 국감장에서 쏟아지는 의원들 질문도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국감은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등이 참석해 '뉴스에 대한 포털 편집권' 등에 대해 답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감에 의미 없는 질문이 자정을 넘기면서 오가자 고동진 사장이 갑자기 손을 번쩍 들더니 "집에 가도 됩니까"라는 질문을 던져 국감 참석자들의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국감 의원들의 ‘귀 막고 말하기’도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국감 증인들이 질의에 대한 답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의원들이 "'예, 아니요'로 대답하라"는 식으로 비하하는 광경은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의원들이 이 같은 행동을 하는 데에는 국감장이 증인 답변보다는 국감에 출연한 자신의 용맹함을 과시하기 위한 장(場)이라고 여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반(反)기업 정서로 무장한 일부 정치권은 터널 비전(Tunnel vision)과 ‘나홀로 갈라파고스(고립지)’ 프레임에 매몰돼 급변하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이러다 보니 국감의 궤적을 잘 살펴보면 올해에도 큰 기대를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올해 국감에서도 증인으로 소환된 기업인들이 제대로 답변할 시간이 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준조세(準組稅)에 대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의 이중 잣대도 눈여겨볼 관전 포인트다.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최순실 사태의 함정에 빠뜨리게 만든 것이 다름 아닌 준조세다. 준조세는 법에도 없는 세금이다. 기업이 부담하는 각종 기부금과 성금이 준조세 성격을 띠다보니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한 해에만 걷힌 준조세가 21조 원을 넘어선 점만 봐도 우리나라는 ‘준조세 공화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러다 보니 국내 기업이 ‘동네북’ 신세를 면하기 어려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와 관련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는 올해 국감에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 관계자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삼성, SK, LG는 사장급 증인이, 현대차와 롯데는 전무급을 증인으로 요청한 대목이다.
이처럼 대기업 간 차별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대다수 정치전문가들은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꼽는다. 2015년 11월 한·중 FTA(자유무역협정)가 국회에서 비준될 당시 여·야·정(與·野·政)은 농어민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 해마다 1000억원씩 10년간 1조원 규모의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재원은 FTA로 혜택을 보는 기업에서 출연을 받되 부족하면 정부가 충당하기로 했다. 그동안 모은 금액은 총 377억원에 불과했다.
모금액은 한·중 FTA 와 연관성이 적은 한전과 한전 자회사 등 공기업이 대부분 출연했고 대기업은 현대차 4억원과 롯데 2억원이 전부였다. 이번 증인 채택 차별은 기금을 조금이라도 낸 기업은 전무급이, 한 푼도 안 낸 기업은 CEO가 나오라는 것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기업들로서는 기금 출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옥고를 치르고 나온 모습을 지켜본 대기업들이 또다시 정부에 거액을 내려 하겠는가. 정부가 아무리 좋은 취지로 기금 출연을 요청해도 근거가 없으면 예전처럼 보험금 성격으로 출연금을 낼 수 없다는 재계 입장을 이유로 대기업 고위임원들을 증인으로 불러내고 있는 형국이다.
이 같은 증인 채택은 대표적인 국회 갑질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이 어쩔 수 없이 출연하면 나중에 "왜 권력에 뇌물성 자금을 냈느냐"고 추궁할 곳도 국회가 아니겠는가.
정부가 맡은 나라 살림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국정감사인데 ‘기업 국감’ ‘호통 국감’이 된 지 벌써 수년째다. 그렇다고 기업인이 국감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지난번 19대 국감에 나온 전체 증인 가운데 기업인 비율이 40%를 이미 넘었다. 이 정도면 국감이 아닌 ‘기업인 국감’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럴 바에는 국감이라는 간판을 내리고 차라리 ‘기업인 국감’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국회가 정부 정책의 감시·비판과 함께 개선책을 제시하는 국감 본연의 취지를 지금이라도 살리려면 국정을 챙기고 피폐한 민생을 보듬는 정책국감이 돼야 한다. 국감장에서 기업인 망신주기로 득의양양하기에는 한국경제가 그리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이제는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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