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노조 전 대표 수잔나 딜버
“유명인보다 구조 개선에 초점”
‘성관계 동의 입증’ 법 개정 성과
스웨덴의 미투 운동 활동가 수잔나 딜버. 지난해까지 배우 노조 대표를 지낸 22년차 배우다. [김상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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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스웨덴의 미투(#MeToo·성범죄 피해 사실 고백) 운동 활동가 수잔나 딜버(42)는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97년부터 배우·작가로 활동하며 2016∼2017년 스웨덴 배우 노조 대표를 지낸 그는 5, 7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주최로 열린 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그는 “미투 운동에 동참한 한국의 여배우들이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한다”며 “스웨덴처럼 배우 노조가 있지 않은 상태라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Q : 스웨덴은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2018년 성불평등지수’에서 세계 3위다. 그런데도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가 수면 밑에서 곪아가고 있었던 건가.
A : “성폭력 피해를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한국과 비슷하다. 피해자가 수치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고, 직업상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컸다. 특히 배우들은 고용이 불안정해 문제 제기가 더 힘들었다. 스웨덴에서 정년이 보장된 극장 소속 배우는 240여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7000여 명의 배우는 프리랜서다. 문제를 제기한 이후 계약이 갱신되지 않아도 그것이 보복인지 여부를 밝히기 힘들다.”
스웨덴의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 역시 지난해 10월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폭로로 촉발됐다. 같은 11월 여배우 457명이 자신들의 피해 사례를 모아 한꺼번에 폭로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러한 ‘익명’ 미투 방식에 대해 딜버는 “유명인의 성범죄만 주목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성범죄가 이렇게 많이, 또 이렇게 지속해서 발생하도록 만든 사회 구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효과는 컸다. 폭로 당일 담당 장관은 공공극장 경영진들을 소집했고, 공연예술노조와 공연예술협회는 성폭력 조사위원회 구성을 결정했다. 그리고 며칠 뒤 오페라 가수 700여명과 음악계 종사자 2000여명도 익명의 공동 미투 선언을 했다.
Q :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하나.
A : “가해자에 대한 고발도 동시에 진행한다. 공개적으로 하지 않을 뿐이다. 노조 소속 변호사들이 법률 지원을 하고 있다.”
Q :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A : “여배우들의 미투 이후 65개 직업군의 여성들이 익명으로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이렇게 수천 명이 목소리를 내면서 이젠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됐다. 법이 바뀐 것도 큰 성과다. 이전까진 성폭력 피해자가 성관계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는데 이제는 가해자가 성관계 동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
Q : 앞으로 미투 운동의 방향은.
A : “우리 사회가 평등으로 가는 길에 성폭력 문제가 제기됐다. 성폭력은 남성에게 유리한 권력 구조의 결과다. 평등이란 관점에서 인종 문제, 다양성 문제 등도 미투 운동의 과제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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