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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전쟁보다 더 많은 피살자, 삶 자체가 전쟁인 중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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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250만명 피살…중동 전쟁 사망자의 2.8배

경제난·빈부차에 교육 열악…청소년들 상당수 갱단 유입

치안 열악해 폭력의 악순환



경향신문

멕시코 에카테펙에서 7일(현지시간) 주민들이 여성 20여명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후안 카를로스 부부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에카테펙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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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검찰은 8일(현지시간) 후안 카를로스와 파트리시아 부부를 여성 20여명을 살해한 혐의로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4일 멕시코주 에카테펙의 집 근처에서 시신 일부를 유모차로 옮기다 검거됐다. 집에서도 부패된 시신 조각들이 발견됐다. 이들은 살해한 피해자의 장기나 신체 일부를 돈을 받고 팔았다. 피해자의 생후 2개월 된 아기를 다른 부부에게 팔기도 했다. 피해자는 대부분 미혼모였다. 이 부부는 자녀 3명과 함께 지내면서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멕시코에서는 최근 할리스코주에서 시신이 가득 찬 냉동트럭이 마을 인근에 방치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시신 안치소가 꽉 찬 탓에 경찰이 냉동트럭을 빌려 시신을 보관한 것이다. 한 검시관은 “시신 1구를 검시하면 바로 옆에 3구가 새로 쌓인다”고 했다.

■ 전쟁터보다 많이 죽는다

중남미에서는 매일 400명, 연간 14만5000명이 살해당한다. 브라질 싱크탱크 이가라페 연구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중남미 지역에서 피살된 사람은 250만명가량이다. 미국 시카고 인구가 사라진 셈이다. 시리아 내전,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발생한 사망자를 모두 합쳐도 90만명 정도다.

중남미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8%이지만 피살자 수는 전 세계의 33%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50곳 중 43곳이 중남미에 있다. 전 세계 살인 사건 4건 중 1건은 브라질, 베네수엘라, 멕시코, 콜롬비아 등 4개국에서 발생한다.

특히 중남미는 2000년대 이후 살인범죄가 증가하는 거의 유일한 지역이다. 이가라페 연구소의 로버트 무가 연구원은 “(전쟁이 없지만) 사실상 항상 전쟁을 겪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 “강한 갱단, 약한 국가”

원인 중 하나는 ‘강한 갱단, 약한 국가’다. 중남미 국가들의 경제는 자원 수출 의존도가 높다. 산업 기반이 약해 일자리가 항상 부족하다. 경제난과 빈부격차는 일자리를 더 줄였고, 빈약한 교육제도는 ‘스펙’마저 소수의 전유물로 만들었다. 브라질의 25세 이상 성인 중 고교 졸업자는 27%에 불과하다. 청소년 상당수가 범죄조직에 유입되는 이유다. 콜롬비아는 세계 최대의 코카인 산지, 멕시코는 세계 최대의 헤로인 산지다. 이웃인 미국은 세계 최대의 마약 소비 시장이다. 넘치는 인적·물적 자원과 거대한 시장을 바탕으로 중남미 범죄조직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반면 치안은 열악하다. 중남미 지역의 살인 용의자 검거율은 20%를 밑돈다. 브라질 경찰의 사건 수사는 평균 500일, 재판에는 10년이 걸린다. 멕시코 연방경찰이 지난 8년간 범죄조직의 살인사건 600건을 조사해 유죄 판결을 얻어낸 건 단 2건뿐이다. 멕시코 주지사들은 경찰력 강화에 집중하기보다 범죄조직과의 밀약을 통해 폭력을 통제한다. “마약 밀매를 묵인할 테니 폭력을 자제하라”는 식이다. 그러나 주지사가 바뀌고 밀약이 파기되면 폭력은 통제불능 상태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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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과 ‘권위주의’ 낳는 폭력

재앙적 수준의 폭력은 폭력을 낳는 구조를 강화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온두라스 청소년 40%가량이 폭력으로 인한 우울증을 앓는다. 한 교사는 “이런 아이들에게 미적분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폭력은 문화에도 영향을 끼친다. 학생을 낙제시킨 교사에 살인 청부 위협을 가하는 학부모, 여자친구를 납치 살해하는 학생 갱단, 아내를 때려 살해하는 남편이 늘어난다. 비대해진 지하경제는 범죄조직을 살찌우고, 경제가 호전되어도 범죄가 줄지 않는 상황을 만든다.

만성적 폭력은 미국에 중남미 이민자가 몰려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밴더빌트대학교의 연구 결과, 온두라스인이나 엘살바도르인의 이민 여부 결정에는 경제 문제보다 ‘범죄 피해 경험’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폭력적 식민지화 과정, 피비린내 나는 독립전쟁의 역사 속에 법치 확립에도 실패하면서 법을 우습게 여기는 문화가 만연했다”며 “법의 지배 없이 도입된 민주주의가 역효과를 낳았다”고 했다. 청년층과 지식인들이 오히려 “민주주의보다 질서”를 찾는 이유다. 권위주의나 독재가 발붙이기 쉬운 환경이 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7일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공권력 강화를 외친 극우 성향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1위를 차지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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