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은미희의동행] 생명 나누는 천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세계일보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오랫동안 내 시선을 붙잡았다. 생을 마감하기 전, 성성한 장기 일부를 타인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서는 한 사람을 배웅하는 장면이었다. 사진만으로도 뭉클했다. 정말, 자신을 나누어주는 일, 그 일은 숭고하고도 위대하다. 그리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당신의 신체를 기증하시겠다고 했지만 자식 된 마음으로 아버지의 유언을 차마 지키지 못했다. 나 역시 오래전에 장기기증희망신청서에 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나는 생전에 해야 하는 골수기증만은 무서워 끝내 빈칸으로 남겨두었다. 나에게 백혈병은 영화나 동화책 같은 이야기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병이었다. 비련의 주인공이 앓는 불치의 병이 바로 백혈병인 것이다.

한데 그런 병을 실제로 내 가족 중 한 사람이 앓게 될 줄이야. 작은 언니가 그 백혈병에 걸린 것이다. 언니는 독한 항암치료를 받고 퇴원했지만 재발했고, 유일한 치료법은 타인의 골수뿐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도 언니와 맞는 유전자가 없었다. 언니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골수은행에 등록을 하고는 마냥 기다렸다. 국내에 맞는 사람이 없으면 국외의 기증자 가운데서 찾아야 하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병원에는 의외로 백혈병 환자가 많았다. 모두가 하나같이 병과 힘겨운 투쟁을 하며 자신에게 골수를 나누어줄 천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골수만이 아니었다. 각각의 병으로 장기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기다리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던가. 다행히도 오래지 않아 언니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 일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는데 웬일인지 간호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골수기증 의사를 밝혔다가도 정작 유전자가 맞는 환자가 나타나면 기증의사를 취하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그 사람은 감사하게도 자신의 골수를 나누어주었고, 언니는 다시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인사라도 할 요량으로 그 사람의 연락처를 물었지만 규정 때문에 우리는 끝내 기증자를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나누어주는 선행처럼 세상에 어렵고 아름다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 천사 같은 사람이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아직 장기기증이 보편화돼 있지 않다. 2017년 기준으로 장기이식 대기자는 3만명이 넘는데, 장기기증자는 3000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100만명당 뇌사자의 장기기증률도 스페인 46.9명, 미국 31.9명, 이탈리아 28.2명, 영국 23.5명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9.95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누가 감히 미래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도무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백혈병을 우리 가족이 앓았듯 미래는 알 수 없는 것. 나눔으로써 한 생명을 살리는 일. 그것처럼 또 위대한 일은 없다.

은미희 작가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