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1 (월)

[공감]응답해주세요! 장관님들, 어른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자해 대유행, 대박자송(대가리박고자살하자), 초등학생 자살, 줄지 않는 청소년 자살, 이생망, 전쟁터 같은 고등학교, 수포자, 영포자, 무기력에 갇힌 교실….’

이런 현실에 마주하고도 입시제도와 국·영·수에 대한 논의에서 한 치도 빠져나올 줄 모르는 답답하고 가혹한 나라에 과연 어른이 있는가? 어른이란 아이들의 문제를 아이들과 만나서 풀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아파하는 아이들을 그대로 두고 보면서 도와주지 않는 것은 돌봄의 방임, 즉 학대이다. 대학생보다 더 많이 공부하는 초등학생들이 제발 학습지, 학원, 숙제 없이 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비는 나라. 그 속에서 모든 게 다 너희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니 이 정도의 학대는 견뎌내라는 어른들의 태도가 아이들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경향신문

집에서 나오지 않거나, 무언가를 부수거나, 게임 중독에 빠지는 남자 아이들. 자신의 몸을 반복적으로 칼로 긋는 여자 아이들. 아이들은 모두 이 세상이 살 만하지 않다고 외치는 중이다. 자해하는 여학생들의 수가 올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자해 관련 사진이 1만장이 넘어섰고, 관련 뉴스도 넘친다. 그러나 국회에서도, 어떤 정당에서도, 학교에서도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하지 말라’고도 안 한다. 이렇게 전염병처럼 번지는 아이들의 절망에 찬 비명을 듣고, 정신의학자 및 심리학자들, 학교 현장의 상담가들이 사회적 재난에 가까운 현상이라고 1000명 가까이 모여 국가에 요청을 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책임 있는 사람들은 무응답이다.

이명박근혜 시절부터의 눈 귀 막은 관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의 정부에 새로 온 사람들,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재인 정부하의 장관님들은 다른 대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아동과 청소년들이 아닌가?

새로 된 교육부 장관은 임명 후 현장에 달려나가 한 사람의 학생이나 교사라도 만나 보았는지 모르겠다. 학생도, 교사도 만나지 않은 채 영어 교육을 배려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아이들이 그나마 영어 절대평가로 한숨 돌리고 조기유학붐이 줄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 오히려 수학 절대평가를 말해야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혹시라도 업자를 대변하는 말은 절대 아닐 것으로 믿고 싶다.

두렵다. 초등학생 한 명이 학교에서 자살을 했다. 그러면 교육부도, 보건복지부도, 여성가족부도 달려가서 함께 이 현실을 한탄하며 부모, 아이들, 교사들을 위로하고 애달파하면서 아이들의 삶을 걱정해야 하지 않는가? 어린이들이 자살을 꿈꾸는 노래, ‘대가리 박고 자살하자’라는 노래를 부르며, 삶을 더 살지 못하겠다는 행렬에 몸을 던지는데 도대체 무엇을 보고 어디를 향하여 정치를 하고 정책을 세운단 말인가?

아이들의 자해 행위에 책임 있는 어른들의 무관심과 무응답은 결국 사회적 혐오로 이어진다. ‘어른들이 도와준 적이 없다, 어른들에게 이해받아본 적이 없다’며 차갑게 식은 아이들의 마음이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애정과 의무, 연대감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혐오로 바뀌는 것이다. 혐오가 넘치는 세상이 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차별과 박해, 단절과 냉대의 문화에 뿌리를 둔다. 혐오는 종종 약한 자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법으로 선택되기 때문이다.하지만 당대의 손익 계산에 미래를 잊은 지금의 관료와 정부는 그런 사실에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있다. 우치다 다쓰루, 가타다 다마미 등 일본의 지식인들은 일본이 어른 없는 나라라고 했다. 1억명 우울사회라고 했다. 우리도 가고 있다. 4000만명 우울사회로. 권력, 자본을 가진 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80%가 우울한 사회. 혐오와 냉소의 사회. 제발 응답하라! 정부 안에 있는 새로운 어른들이여! 사람이 먼저라는 주장을 외쳤듯이, 학생들의 상처 난 손목, 지치고 허기진 마음을 보고, 교사들의 처절한 목소리를 듣고 어른 노릇을 하라! 그리고 국민을 사랑한다면 대책을 세워라! 학원가대책이 아닌, 학생을 살리는 삶의 대책을! 우리에게 미래를 돌려줄 생명의 대책을!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