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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특별 기고]국내 첫 ‘의료서비스 환자경험’ 평가 결과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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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8월9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환자가 직접 참여한 ‘의료서비스 환자경험’ 평가결과를 공개했다. 이는 의료서비스 수준을 국민 관점으로 확인한 국내 첫 조사 결과이다. 의료는 환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정부 기관에서 이런 연구를 실시했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의료인도 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결과를 엄정하게 분석했을 때 연구 결과의 신빙성에는 분명 문제점들이 있다.

우선 선택된 환자들의 상병이 심한 병이냐 아니면 가벼운 병이냐가 매우 중요하다. 심각한 병이었다면 생존율이나 입원 치료 후 장애 정도 등의 결과가 더 중요한데, 이런 결과들을 먼저 감안한 후 서비스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전문적인 용어로는 중증도 보정이라고 하는데, 외국의 비슷한 연구들은 같은 병이어도 병세가 얼마나 심한지에 대한 보정까지 실시하며 환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한다. 여기에 대한 고려가 없으면 가장 어려운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가장 사망률이 높은 의사들로 데이터가 나오게 된다.

식당에서 음식 자체가 아닌 시설과 종업원 서비스만을 평가한 결과를 보고 식당을 선택하는 손님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 기관에 대해 이런 식의 평가는 분명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통계적인 문제점들이다. 이와 같은 표본 조사의 신뢰성은 표본이 전체 집단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가이다. 본 조사는 수백만건에 달하는 전체 입원 환자 중에서 임의로 선택을 한 10만여명의 표본 중 다시 절대 다수의 무응답자(거의 90%)를 배제하고 이루어진 것이다. 전체 집단의 1%도 안되는 표본으로 한 조사 방법이 신뢰성을 가지려면 표본 선택의 방법, 조사에 포함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 등 여러 가지 변수를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실시하는 지지율 조사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집 전화로 할 것이냐, 휴대폰으로 할 것이냐, 방문을 할 것이냐 등 다양한 방법에 따른 변화가 있기 때문에 각 설문조사 회사마다 조사하는 집단이 전체 투표권자를 반영하느냐를 고민한다.

이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도자료는 설명을 하지 않는다. 최소한 이에 대한 제한점을 충분히 언급을 해야 국민들에게 정확한 이용 가능한 정보로서 기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과 해석에 대한 문제다. 자료를 보면 전반적인 평가 점수가 평균 83.9점이고 표준 편차는 3.5%인데, 이에 따르면 전체 병원 중 68%가 약 87점과 80점 사이의 점수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상위 16%에 속하는 87점과 하위 16%에 속하는 80점이 실제로 의미 있는 차이인지 고려가 필요하다. 상위 점수로 가면 문제가 더 많은데, 간호 부문의 1위인 93.75점은 표준 오차를 감안하면 90.36점에서 97.14점 사이의 값이고, 2위의 값 93.23점은 89.96점에서 96.60점 사이의 값이다.

따라서 1위와 2위의 차이는 통계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의미가 없는 차이에 불과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런 고려가 없이 순위를 나누어 공개하는 것은 소기의 목적과는 다른 역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

정부기관이 발표하는 결과는 매우 큰 영향이 있는 만큼 결과의 정확성에 대해서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 이런 자료를 공개하기에 앞서 엄밀한 방법론에 대해서만이라도 보건복지부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는 독립적인 기관의 검정이 필요했다는 생각이다.

정천기 |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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