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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송유관公, 탱크 폭발까지 18분간 불난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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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저유소 화재’ 방재·보안시스템 부실 드러나 / CCTV·순찰 등 다른 경로도 ‘깜깜’ / 탱크 외부선 잔디화재 감지 못해 / 내부선 노후화로 산소 유입 가능성 / 화재 감지 센서 설치 유무 놓고 경찰·공사 양측 간 말 달라 논란 / “전국 노후 위험물시설 점검 필요”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한송유관공사의 고양저유소는 화재를 막을 시설과 인력, 보안 시스템이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저유소 밖 화재 감지센서 미설치와 저유소 노후화로 인한 산소 침투 등이 화재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양저유소와 같은 위험물 저장탱크에서 매년 10건가량의 화재나 폭발 등 안전사고가 난 것으로 집계됐다.

세계일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CCTV 영상 공개 경기 고양경찰서가 9일 공개한 폐쇄회로(CC)TV 화면에서 스리랑카인 A(27)씨가 저유소 방향으로 날아가는 풍등을 쫓아 뛰어가고 있다. 풍등이 저유소 근처로 날아가서, 잔디밭에 떨어져 연기가 피어오른 뒤, 불길이 치솟고 있다. 고양경찰서 제공


고양경찰서는 9일 수사 결과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측이 풍등에 의해 발생한 불이 저유소 탱크 내부에 옮아 붙기까지 18분간 화재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이는 휘발유 탱크 외부에 화재 감지센서가 없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이 풍등(지름 40㎝, 높이 60㎝)은 스리랑카 근로자 A(27)씨가 지난 7일 오전 10시32분 고양시 덕양구 강매터널 공사현장에서 날린 것이다. 풍등은 300 떨어진 저유소 탱크 바깥 잔디에 추락했으며, 오전 10시36분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불길이 번지면서 유증기 배출 환기구로 빠져나온 유증기와 만나 탱크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18분 뒤인 오전 10시54분 첫 폭발이 일어났다.

A씨는 처음에는 혐의를 부인하다가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보고 풍등을 날린 사실을 인정했다. 경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풍등이 휘발유 탱크 바로 옆 잔디밭에 추락하는 장면과 A씨가 뛰어가는 장면 등이 녹화된 CCTV 영상을 공개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풍등과 저유소 화재 간 인과관계를 정밀 확인하는 한편 재차 합동감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대한송유관공사 측은 저유소 내 CCTV 46대를 모니터링하는 전담 인력이 없어서 폭발이 일어나기 전까지 화재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통제실 근무 인력은 2인 1조로 편성되며 사고 당시 통제실에는 근무자 한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 CCTV를 유심히 지켜보지 않았다. 또 14개의 유류 탱크가 있는 시설 외부에는 유증기 감지기만 2대가 있었고 화재 감지기는 없었다. 대한송유관공사는 이날 입장문을 내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안전기구’를 만들어 사업장의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최구 수준의 안전설비 능력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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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경찰 관계자가 대한송유관공사 고양저유소의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풍등과 동일한 모형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고양=뉴시스


이송규 안전전문가(전 대한기술사회 회장)는 “증기 환기구를 통해 불이 붙더라도 탱크 내부에 산소가 없었다면 스스로 꺼졌을 것”이라며 “사용한 지 24년 넘은 탱크가 노후화하면서 어딘가에서 외부 공기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의 저유소·가스저장소 등 노후 위험물 시설에 대한 안전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양저유소가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시설인데도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안전설비나 출입통제 등도 상대적으로 소홀해 언제라도 그제와 같은 화재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증기 배출 환기구에 화재를 막는 인화방지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설치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 8월까지 대한송유관공사 고양저유소와 같은 위험물 저장탱크에서 48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저장탱크를 포함한 모든 위험물 시설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솜방망이 징계에 그쳤다. 같은 기간 위험물 시설 안전사고에 대한 9832건의 조처 중 관리 책임자가 형사 입건된 건수는 876건(8.9%)에 불과했다. 경고와 시정명령 등 행정명령이 6117건(62.2%), 과태료 처분이 2839건(28.9%)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김 의원은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고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관련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양=송동근 기자, 이창훈 기자 sd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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