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7 (월)

임신하면 "언제 그만둘 거냐" 비아냥… 진료비도 부담 [뉴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0일 임산부의 날… 여성들 목소리 들어보니

세계일보

‘1.52명(1997년)→1.26명(2007년)→1.05명(2017년)’

출산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올해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1명선까지 붕괴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른바 ‘0.9쇼크’를 눈앞에 뒀다.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부부들의 마음은 쉬이 바뀌지 않고 있다. 특히 여성들이 임신 중 넘어야 한 난관이 한둘이 아니란 점은 출산을 꺼리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세계일보는 ‘임산부의 날’(10일)을 맞아 현재 임신 중이거나 최근 출산한 산모, 출산 계획이 있는 여성 등 5명에게서 ‘임산부로 살아가기’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정부 지원이 많아지긴 했으나 정책의 ‘디테일’이나 사회적인 배려가 아쉬웠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임산부 눈높이서 정책 만들어야…”

세계일보

지하철 내 임산부석 지정 등 임산부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 많이 마련됐으나 임산부를 세심히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히 미흡하기만 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얼마 전 아이를 출산한 직장인 김모(35)씨는 올여름 ‘가마솥 더위’ 속에 지하철 타기가 가장 고역이었다. 노인과 임산부 등 교통약자는 찬바람에 약하다는 선입견 탓인지 임산부석은 대부분 ‘약냉방석’으로 되어 있었다. 김씨는 “임신하고 나니 기초체온이 올라가 조금만 움직여도 땀범벅이 되더라”라며 “임산부 커뮤니티에도 ‘덥다’고 토로하는 글이 봇물인데 누가 만든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초음파 검사에 적용되는 건강보험 횟수가 7번밖에 안 되는 점도 아쉬웠다고 한다. 출산 전까지 10번 넘게 진료받는 사례가 많은데 횟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임신 14주차에 교통사고를 겪었던 그는 이후 경과를 보느라 출산 전까지 총 17번 초음파검사를 받았다. 김씨는 “산부인과 진료 때마다 초음파를 보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담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역 보건소에서 진행되는 태교 정보나 임산부 관련 프로그램은 ‘그림의 떡’이었다. 대부분 평일에 진행된 터라 직장인인 김씨로서는 군침만 다실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직장 다니는 여성들이 늘어난 만큼 지원 프로그램도 다양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언제 그만둘 거야?” 말에 한숨만

임신 후 직장에서 듣는 말들은 ‘비수’로 가슴에 꽂힌다. 임신 10주차에 접어든 공무원 박모(29)씨는 직장에서 ‘눈칫밥’에 속앓이가 깊다.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활용해 퇴근시간을 2시간 앞당기면서 생긴 일이다. 업무 특성상 야근과 당직근무가 많아서일까. 한 동료 직원은 매번 그가 일찍 퇴근할 때마다 “언제 그만둘 거냐”고 비아냥대기 일쑤다. 한두 번은 농담이려니 생각했으나 반복되는 면박에 스트레스가 심하다.

박씨는 “법에 있는 제도를 활용하는 건데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며 “‘자기 몫도 제대로 못하는 무능한 존재’처럼 여겨질 때면 속상하다”고 털어놨다.

세계일보

내년 임신 계획을 가졌던 직장인 이모(30·여)씨는 최근 임신한 직장 선배가 겪는 ‘수모’를 목격하면서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그의 직장 상사는 “여자는 임신하면 끝이다”, “이래서 여자를 많이 뽑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란 듯이 떠들어댔고, 선배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위축됐다. 육아휴직은커녕 출산 바로 직전까지도 출근을 해야 했다. 이씨는 “일과 출산이 양립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말 출산율을 높이려면 이런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4월 인천시가 직장인 118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임신·출산을 하면 퇴사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이 83.2%에 달했다.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은 이런 무언(無言)의 압박들을 견뎌야 출산에 이를 수 있는 셈이다.

◆불쑥 배 만지고 코앞에서 담배 피우고

세계일보

최근 출산한 이모(33)씨는 임신 중 사람들이 자기 배를 아무렇지 않게 만지는 걸 보고 놀랐다. 친척들과 직장 동료, 친구들은 거침없이 그의 배를 만졌다. 선의임을 알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배 만지기 어디까지 용납해야 하느냐’는 질문 글을 올렸을 정도다. 또 다른 김모(28)씨는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에서의 배려가 아쉬웠다. 배가 부른 것을 빤히 보고도 모른 체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임신했는데 비켜줄 수 있느냐”는 말이 목구멍에서만 맴돌았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흡연자들은 ‘지뢰’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담배 연기는 태아 건강에 치명적이지만 바로 코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 연기를 내뿜는 일이 흔해서다. 임산부들은 이밖에도 ‘일상 속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임산부 32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 60.2%만 “배려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인구보건복지협회 관계자는 “임산부 배려 문화는 성숙한 시민의식의 산물”이라며 “임산부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수·남혜정 기자 winterock@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