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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스웨덴에서 미투 운동을 익명으로 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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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미투 운동 활동가 수잔나 딜버 인터뷰

'미투' 촉발 당시 배우 노조 대표

가해자ㆍ피해자 안 밝히는 '익명' 고수

'성관계 동의 입증' 등 법 개정 이끌어

중앙일보

스웨덴의 ‘미투’ 운동을 이끌고 있는 수잔나 딜버. 지난해까지 스웨덴 배우 노조 대표를 지낸 22년차 배우다. 8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그는 ’스웨덴의 미투 운동이 집단적 움직임이었다면 한국은 피해자가 개별적으로 나서야 했다“고 짚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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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힘이 있다.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동정을 살 뿐이지만, 무리가 이야기하면 사회가 바뀐다.”

8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스웨덴의 미투(#MeTooㆍ성범죄 피해 사실 고백) 운동 활동가 수잔나 딜버(42)는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97년부터 배우ㆍ작가로 활동하며 2016∼2017년 스웨덴 배우 노조 대표를 지낸 그는 5, 7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주최로 열린 미투 관련 국제 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그는 “미투 운동에 동참한 한국의 여배우들이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한다”며 “스웨덴처럼 배우 노조가 있지 않은 상태라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Q : 스웨덴은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2018년 성불평등지수’에서 세계 3위를 차지할 만큼 남녀평등이 실현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문제가 수면 밑에서 곪았었나.



A : “성폭력 피해를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한국과 비슷하다.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고, 직업상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컸다. 특히 배우들은 고용이 불안정해 문제 제기가 더 힘들었다. 스웨덴에서 정년이 보장된 극장 소속 배우는 240여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7000여 명의 배우들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문제를 제기한 이후 계약이 갱신되지 않아도 그것이 보복 행동인지 여부를 가려내기 힘들다.”


중앙일보

스웨덴의 ‘미투’ 운동을 이끌고 있는 수잔나 딜버.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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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 역시 지난해 10월 헐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폭로로 촉발됐다. 출발은 여성배우들이었다. 지난해 11월 여배우 457명이 자신들의 피해 사례를 모아 한꺼번에 폭로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러한 ‘익명’ 미투 방식에 대해 딜버는 “유명인의 성범죄만 주목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성범죄가 이렇게 많이, 또 이렇게 지속해서 발생하게 한 사회 구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 “피해자 신상 노출에 따른 2차 피해와 맞고소를 막자는 의도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효과는 컸다. 이들의 폭로 당일 담당 장관은 공공극장 경영진들을 소집했고, 공연예술노조와 공연예술협회는 성폭력 조사위원회 구성을 결정했다. 극장주협회ㆍ영화협회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리고 며칠 뒤 오페라 가수 700여명과 음악계 종사자 2000여명도 익명의 공동 미투 선언을 했다.



Q : 익명을 고수하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어려울 것 같은데.



A : “가해자에 대한 고발도 동시에 진행했다.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을 뿐이다. 노조에 소속된 변호사들이 법률 지원을 하고 있다.”




Q : 미투 운동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A : “여배우들의 미투 이후 65개 직업군의 여성들이 익명으로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이렇게 수천 명이 목소리를 내면서 이젠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됐다. 또 모든 극단이 연습 첫날 성폭력에 대한 정책과 피해자 대처 방안을 큰 소리로 낭독한다. 법이 바뀐 것도 큰 성과다. 이전까진 성폭력 피해자가 성관계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는데 이제는 가해자가 성관계 동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




Q : 앞으로 미투 운동의 방향은.



A : “우리 사회가 평등으로 가는 길에 성폭력 문제가 제기됐다. 성폭력은 남성에게 유리한 권력 구조의 결과다. 평등이란 관점에서 인종 문제, 다양성 문제 등도 미투 운동의 과제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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