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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고양 저유소 화재는 인재… 송유관 공사 18분간이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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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경기 덕양구 대한송유관공사의 고양저유소는 화재를 막을 시설이나 시스템이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언제든 지난 7일과 같은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셈이다. 특히 관리 주체인 대한송유관공사의 민영화 영향도 있었는지 관심이 모아진다.

고양경찰서는 9일 수사 결과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측이 저유소 탱크 내부에 불이 옮겨붙기 전 최초 18분간 화재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이는 휘발유 탱크 외부에 화재 감지센서가 없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스리랑카 근로자 A(27)씨는 지난 7일 오전 10시32분 고양시 덕양구 강매터널 공사현장에서 풍등을 날려 저유소 시설에 풍등(지름 40㎝, 높이 60㎝)이 떨어지게 해 불이 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가 날린 풍등은 공사현장에서 불과 300m를 날아간 뒤 추락했으며, 저유소 탱크 바깥 잔디에서 오전 10시36분 연기가 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폭발은 18분 뒤인 오전 10시54분 일어났다.

이때까지 대한송유관공사 측은 화재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이는 휘발유 탱크 외부에는 화재 감지센서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관제실에서 볼 수 있는 폐쇄회로(CC)TV나 순찰을 통해서도 화재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고양송유관공사 측에서는 폭발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앞서 지난 6일 오후 8∼9시에 인근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아버지 캠프' 행사에서 날아온 풍등을 주워 날린 것으로 조사됐다. 행사 주최 측은 풍등 80개를 인터넷으로 구입했으며, 초등학교 아버지회의 아버지들이 풍등을 날린 것으로 조사됐다. 그 중에서 풍등 2개가 공사현장까지 날아왔고, 다음날인 7일 오전 출근한 A씨가풍등 1개를 주워 쉬는 시간에 자신의 라이터로 불을 붙여 풍등을 날린 것이다. 이때 풍등이 저유소 방향으로 날아가자, A씨가 풍등을 쫓아갔으나 잡지 못했고 날아간 풍등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뒤 되돌아갔다.

A씨는 처음에는 혐의를 부인하다가 CCTV에 녹화된 영상 등을 보고 풍등을 날린 사실을 인정했다. 경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풍등이 휘발유 탱크 바로 옆 잔디밭에 추락하는 장면과A씨가 뛰어가는 장면 등이 녹화된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풍등과 저유소 화재 간 인과관계를 정밀 확인하고 재차 합동감식을 진행하는 등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대한송유관공사가 2001년 민영화한 이후 시설 안전관리 책임이 분산되거나 소홀해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대한송유관공사는 국내 유일의 송유관 운영 기업으로 경질유 소비량의 58%를 수송하는 에너지 물류 전문 기업이다.

1990년 1월 정부와 정유사 5곳·항공사 2곳이 합작으로 세웠다가, 정부의 민영화 계획에 따라 2001년 민영화됐다.

민영화 과정에서 대한송유관공사의 지분을 최대주주 SK이노베이션(41.0%)을 비롯해 GS칼텍스(28.62%)·산업통상자원부(9.76%)·에쓰오일(8.87%)·현대중공업(6.39%)·대한항공(3.10%) 등이 보유하게 됐다.

이 때문에 업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최대주주를 비롯한 주주 정유사들에 시설 안전관리 문제 등 화재 관련 책임이 없는지로 쏠리고 있다.

그러나 대한송유관공사 측은 “정유사들이 주주인 건 맞지만 우리는 별도의 법인이기 때문에 경영은 각자 하는 것”이라며 “시설관리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입장이다.

공사 측은 이날 경찰 수사결과 발표 중 “탱크 외부에 화재 감지센서가 없었다”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저유소 외벽에는 감지센서가 없었으나, 저유소에서 기름을 덮어 불에 공기가 닿는 걸 막아주는 방식으로 일종의 지붕 역할을 하는 플로팅 루프 위에 불꽃 감지장치가 설치돼 있었다는 것이다. 대한송유관공사 측은 “화재가 발생한 곳과 불꽃 감지장치 간에 거리가 좀 있다 보니 폭발 전 화재를 감지할 수 없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의정부=송동근 기자 sd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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