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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흡연에 욕설까지 파격 변신…한지민은 왜 ‘미쓰백’을 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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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영화 '미쓰백'으로 처음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한지민은 "그동안 다른 배우 뒤에서 숨을 곳이 많았는데 맨 앞에 오다 보니 개봉일이 다가올수록 더 떨린다"고 말했다. [사진 BH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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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배우 한지민(36)은 ‘단아하고 청순한’ 매력의 대명사에 가까웠다. 2003년 드라마 ‘올인’에서 동갑내기 송혜교의 아역으로 데뷔한 이래 ‘이산’(2007) ‘옥탑방 왕세자’(2012) 등 올곧은 이미지를 지켜왔다.

올해 그가 선보이는 작품들은 다소 충격적이다. 지난달 종영한 tvN 드라마 ‘아는 와이프’에선 억척스러운 워킹맘을 연기하더니 11일 개봉하는 영화 ‘미쓰백’(이지원 감독)에서는 흡연에 욕설까지 일삼는다. 심경에 무슨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개봉 전 만난 한지민은 “우연한 기회에 연기를 시작해서 남들보다 훨씬 느리고 겁이 많은 아이였다”며 “신기한 마음에 열심히는 했지만, 어느 순간 비슷비슷한 역할은 이제 못 하겠다는 시기가 왔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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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한 드라마 '아는 와이프'에서는 초반 극성맞은 아줌마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 [사진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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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선 ‘아는 와이프’에서 주부 역할을 할 수 있겠냐고 걱정하셨는데 저는 재밌었어요. 언니와 조카 덕분에 직·간접 육아 경험도 많고. 극 중 서우진이 실제 제 성격이랑도 비슷하거든요. 털털하기도 하고, 욱하기도 하고. 연기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내려놓게 된 거죠.”

이런 그에게 ‘미쓰백’은 여러모로 꼭 필요한 작품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에 학대받고 버려진 뒤 성범죄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주인공 백상아는 그에게 많은 변화를 필요로 하는 역할이었고, 역시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거리로 나온 소녀 지은(김시아 분)과 만나 연대하는 과정은 평소 아동 문제에 관심이 많은 그가 전하고픈 메시지와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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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쓰백'에서 파격 변신을 시도한 배우 한지민. [사진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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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옆집에 살던 아이가 겪은 일에서 모티브를 얻어 직접 쓴 시나리오는 그에게 소설처럼 정교하고 섬세하게 다가왔다. “저는 여운이 많이 남았는데 감독님이 절 생각조차 안 할까 봐 걱정했죠. 처음에 리스트에서 한지민이란 이름을 보고 ‘됐다 그래’ 그러셨대요. 그런데 ‘밀정’(2016) 뒤풀이 때 저를 보고는 번개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대요. 올블랙으로 입고 클러치 끼고 가는데 일수가방 같았다나요. 평소 제 이미지와는 정반대였으니 함께 할 인연이었던 거죠.”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자 캐릭터는 점차 입체적으로 변모했다. 무엇이 백상아를 그토록 날 서 있게 만들었는지, 왜 그리도 매사에 표현이 서툰지 파고들었다. “처음엔 백상아가 화장을 할 시간이 있었을까 싶었는데 혼자 세상에 맞서 살아가다 보니 ‘너 나 건들지마’ 하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싶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염색도 맥주로 머리를 빤 듯한 노란색으로 하고, 립스틱을 발라도 강렬한 빨간색을 선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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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쓰백'에서 아동학대를 경험한 백상아(한지민)는 한눈에 피해자를 알아본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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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외모의 백상아는 학대받던 소녀 지은과 서로 닮은꼴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이들은 점차 의지하는 법을 배워간다. 사람을 믿지 못해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그들이 서로 눈을 마주 보고, 상처를 내보이며 치유에 다가가는 과정이 영화에 그려진다. 모성애도, 자매애도 아니지만, 동질감에서 비롯된 힘이 이들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날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들은 모두 순수하게 태어났는데 무엇이 사람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만약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면, 그 사회에 있는 모든 어른에게 책임이 있는 거죠. 한데 피해자들을 위한 법적인 보호 테두리도 거의 없고, 가해자들에 대한 형량도 터무니없이 약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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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민은 "지금도 극중 두 사람이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지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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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소녀를 구하기 위해 엄마가 되고자 나서는 설정이 드라마 ‘마더’와 유사하다는 지적에는 “이런 작품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뉴스를 보면 분노하는 건 잠시뿐이지만, 같은 문제를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게 되면 감정이입으로 효과가 더 커져 변화의 실마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등학교 시절 고아원에 봉사 활동을 나갔다가 한 아이에게서 “어차피 오늘만 오고 안 올 것 아니냐”는 얘길 듣고 전공으로 사회사업학과를 택했다는 그다운 대답이었다.

2004년부터 노희경 작가, 배종옥 배우 등과 함께 사회봉사모임 ‘길벗’을 꾸려 매년 두 차례 거리 모금에 나서는 행동파이기도 하다. 올해 어린이날에는 ‘굶주리는 지구촌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주세요’란 주제로 모금을 진행했다. “어떤 분들은 제가 천 원에 악수를 판다고 하는데 그럼 어때요. 천원이면 영양실조에 걸린 한 아이가 일주일을 먹고 사는 걸요. 남을 위한다지만 사실 저를 정화하는 시간이기도 해요. 해 보면 아실 거예요.”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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