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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한일관계 최악 아냐…북미회담이 관계개선 모멘텀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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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톡톡]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인터뷰

8일은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전 일본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한 지 딱 20년째 되는 날이다. 1998년 10월8일 도쿄에서 발표한 DJ·오부치 선언은 일본이 식민지 지배 등 과거사에 대해 통렬히 반성·사죄하고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를 만들어가자는 다짐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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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25일(현지시각) 유엔 총회 참석 중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환담하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하지만 최근 한일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이날 우익 성향의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2015년 12월 박근혜정부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출범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재단’을 연내 해산할 방침을 최근 일본 측에 전달했다며 합의 위반을 거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 대한 결론을 올해 안에 낼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전날에는 일본 정부가 일본 기업의 배상이 확정될 경우 한국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언론 보도도 이어졌다. 일본 해상자위함이 전범기인 욱일기(旭日旗)를 게양한 채 제주에서 열리는 국제관함식에 참가하려다가 한국이 자제를 요청하자 지난 5일 사실상 불참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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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27일 일본 요코스카 항에 해상자위대 함정 구니사키 호가 정박한 모습. 도쿄 AP=연합뉴스


◆“한일 관계, 최악 아니지만…日, 꼬리로 머리 흔들어”

양국 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인 과거사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한일 관계가 DJ·오부치 선언 이후 최악의 상태에 놓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비하면 최악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양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만 4번을, 한미일 정상회담까지 포함하면 6번을 했다. 전화통화도 12차례 이상 한 것으로 안다”며 “실무레벨에서도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서훈 국정원장도 한반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일본을 세 차례 방문해 정보를 공유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당시,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박근혜 정부의 임기 초 한일관계에 비하면 현재 한일 정부는 압도적으로 소통이 잘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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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시민단체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양 교수는 다만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한 데에는 일본이 과거사를 직시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예로 들며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2015년 합의문의 핵심은 ‘아베 총리의 통렬한 사죄’인데 일본은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에만 방점을 찍고 논의를 이어가려 한다는 뜻이다. 양 교수는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국제적·보편적·도덕적 질서에 따라 대응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文-아베 선언은 시기상조…먼저 비핵화 성과 내야”

최악의 상황은 아니더라도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DJ-오부치 선언처럼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2.0’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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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8일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총리가 영빈관에서 21세기 새시대를 위한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양 교수는 ‘공동선언 2.0’에 대해 “지금은 시기상조”라고 진단했다. 그는 “우선 일본군 위안부 합의, 강제징용 판결 등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불거질 민감한 현안이 너무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파트너십 선언을 밀어붙인다면 나중에 수습해야 할 뒷일이 너무 많다”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DJ·오부치 선언 때보다 한일관계 회복 과정이 복잡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한일관계는 수평적이다. 예전처럼 상하관계가 아니다”며 “양국 정상 간에 직접적인 논의로 구체적 합의를 도출하는 이른바 ‘톱다운(Top down)’식 타결은 힘들어졌다”고 분석했다. 또 “한국과 일본은 정부뿐 아니라 시민단체 등 민간에서도 다양한 대립·갈등·협력이 이뤄지고 있어 이전보다 훨씬 다층적인 관계로 접어들었다”며 “그동안 단절된 한일역사공동위원회 등 민간 차원의 지적 교류부터 풀어나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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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양 교수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진전이 한일관계를 푸는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그는 “다가오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에서 종전선언 등의 성과가 나오면 비핵화 협상이 안정적인 단계에 접어든다”며 “그래야만 일본에게 (비핵화 관련) 다자협정 참가, 북일수교 추진 등의 자연스러운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은 북일관계 개선을 절실하게 바라고 있다. 그러나 한일관계가 비뚤어진 상황에서는 북일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수 기자 samenumb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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