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기관 관할하는 靑민정 "법원행정처 폐지, 시대적 과제"
법조계 "삼권분립 월권 소지"
조국〈사진〉 청와대 민정수석이 8일 "법원행정처 폐지 등 사법 개혁은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며 이와 관련한 입법 조치를 국회에 요청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행정처 폐지는) 사법부가 주도하되, 입법 사항이니만큼 국회가 매듭을 지어야 한다. 국회 사법개혁특위 활동을 기대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법원행정처는 법원 인사·예산을 총괄하는 대법원 산하 기관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핵심 참모가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의 개혁 방향을 언급한 것이다. 법조계에선 "조 수석 발언은 삼권분립의 측면에서 보면 월권(越權)의 소지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조 수석은 같은 글에서 한 기사의 인터넷 주소를 링크하기도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6년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수사가 개시된 직후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적용될 수 있는 혐의와 관련한 법리 검토를 해준 정황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조 수석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양승태) 법원행정처 유착을 보여주는 새로운 악례(惡例)"라고 했다. 그래서 법원행정처 폐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이 의혹에 대해선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악례라고 기정사실화해 법원 개혁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전직 헌법재판관은 "조 수석이 스스로 판단을 내려 법원을 압박하고, 검찰에도 악행을 저지른 전 정권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단죄하라는 사실상의 수사 지휘를 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했다.
조 수석은 최근엔 '자유한국당 등이 여전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고 썼다. 현 정권의 대표 공약인 공수처 설치를 위한 국회 입법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한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지만, 민정수석이 야당을 공개 비판한 것도 전례가 드물다.
조 수석은 지난달 28일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언급했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폭로한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에 대해 청와대 측의 해명 자료를 그대로 올려 사실상 반박한 것이다. 이 자료에는 '부당한 집행은 없다'며 '다만 상호가 주점(酒店)으로 된 곳에서 사용된 사례는 일부 있으나 늦은 시간 간담회 개최 등 불가피한 사유였다'고 돼 있다. 청와대 업무 카드 사용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민정수석은 검찰 인사 업무를 한다"며 "민정수석이 문제 없다는 글을 올리면 검찰이 청와대의 부적절한 카드 사용 사례가 나와도 제대로 발표를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업무추진비 사용 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조 수석이 강조하려던 취지"라며 "수사 지휘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민정수석은 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 등 권력 기관을 관할하는 막강한 자리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큰 논란을 낳을 수 있고, 관련 기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그동안 대부분 민정수석들은 외부 접촉이나 발언을 삼갔다. 그런데 조 수석은 최근 거의 매일 페이스북에 글이나 기사 등을 올려 자신의 생각을 직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전 정권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한 인사는 "민정수석이 건건이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민정수석의 말은 곧 대통령의 말로 외부에 인식된다"고 했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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