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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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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학계가 의심쩍어한 척추 내시경 수술법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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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절개 최소화, 부분마취

정상 조직은 손상 않고 수술

최다 인용 논문 ‘톱50’들어

요즘 수술법의 대세는 ‘최소침습’이다. 기존의 표준 수술과 동일한 효과를 내면서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한 기법이다. 상처는 거의 남지 않고 합병증은 적으며 회복이 빨라 환자에게 큰 이득이다. 그러나 뼈가 밀집한 척추 수술에서만큼은 이런 기법을 꽃피우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에 태세 전환이 이뤄졌다. 디스크·척추관협착증도 내시경을 이용해 피부 절개 없이 치료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척추 내시경 수술법 발전의 주역,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안용 교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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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 교수는 기존 수술에 비해 정상 조직의 손상 범위를 크게 줄인 척추 내시경 수술을 국내에 정착·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프리랜서 김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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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 교수는 원래 척추보다 뇌에 관심 있는 신경외과 의사였다. 소아 신경외과, 그중 소아 뇌 내시경 수술에 유독 흥미를 느꼈다. 모교인 서울대에서 전임의(펠로) 수련을 마칠 때쯤 지방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소아 신경외과 분야 교수직을 제안받았다. 경험을 쌓고 연구할 기회를 얻은 것 같아 흔쾌히 지방행을 결정했다. 그러나 당시 아버지가 위암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으면서 그의 운명은 바뀌었다. 그는 상중에 서울의 한 척추 전문병원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또 한 번 받았다.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건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며 “심사숙고한 끝에 2000년 대학이 아닌 개원가로 발길을 돌렸다”고 말했다.

그가 전문병원을 택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병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척추 내시경 수술’을 선보인 곳이다. 척추 내시경 수술은 독일과 우리나라의 몇몇 의사만 관심을 보일 만큼 생경한 분야였다. 내시경 수술 공부에 심취했던 터라 그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수술의 태동기를 몸소 경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수술 발전 단계마다 논문으로 남겨


척추 내시경 수술은 목·허리 디스크나 척추관협착증 치료에 활용된다. 기존에는 전신마취를 한 후 피부를 절개하고 근육을 벌려 뼈를 깎아낸 다음 디스크 수술을 했다. 이때 정상 조직이 손상돼 수술 후유증이 많이 생기고 회복이 더뎠다. 반면에 척추 내시경 수술은 피부·근육·뼈를 온전히 놔둔 채 내시경을 환부에 직접 접근시킨 뒤 수술한다. 부분마취를 하고 피부 절개를 최소화하기 때문에 기존 수술법에 비해 수술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다. 그는 “척추 내시경 수술은 피부를 3㎜ 정도만 절개한 다음 내시경과 미세 수술 도구를 넣어 수술하는 방식”이라며 “일반적인 척추 수술법이 아니기 때문에 수술을 수월하게 하려면 별도의 수련과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내시경 수술 기법을 처음 접한 학계의 반응은 차가웠다. 안 교수는 2002년 신경외과학회 학술대회장에서 수술 장면을 영상으로 만들어 동료와 선후배 의사 앞에서 발표했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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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대학교수들은 ‘척추 수술의 기본을 아느냐’ ‘뼈로 둘러싸인 조직에 어떻게 내시경을 넣느냐’ ‘원칙에 어긋나는 수술법’이라는 피드백을 쏟아냈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일로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회상했다.

의사·학자로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그는 이 수술법을 포기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임상 경험을 차곡차곡 쌓았고 연구에 매진했다. 수술을 하면서 한계와 고비가 찾아올 때면 학문적으로 접근해 해결책을 모색했다. 수술의 발전 단계마다 자신의 경험을 논문에 녹여냈다. 트라우마 탓에 학회장에는 발길을 끊었지만 국내외 척추 관련 학술지에는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척추 내시경 수술이 빛을 본 건 2010년께다.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 척추 내시경 수술과 기존 수술의 효과를 비교·분석한 논문이 쏟아져 나오면서부터다. 안용 교수는 “두 수술을 메타 분석한 논문을 보면 척추 내시경 수술이 기존 수술법에 비해 효과가 우수하고 합병증이 적으며 치료비가 덜 든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로써 내시경 수술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이 이뤄졌고 의사들 사이에서도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가 묵묵히 진행하던 연구에서도 성과가 빛났다. 그의 논문이 최소침습 척추 수술 분야에서 발표된 논문 가운데 ‘최다 인용 논문 톱50’에 선정된 것이다. 선정 결과가 담긴 논문은 2016년 척추 분야의 최고 권위 학술지(Spine)에 게재됐다. 그가 작성한 논문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다고 공인받은 순간이다.

그의 경력이 재조명되자 대학에서 러브콜이 왔다. 가천대 길병원은 그에게 교수직을 제안했고 그는 받아들였다. 연구 논문 실적과 임상 경험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2016년 정교수로 임명됐다. 최상위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에서 병원급 의료기관 의사를 정교수로 채용한 사례는 국내에선 찾기 힘들다. 안 교수는 “17년간 전문병원에서 진료·수술·연구를 했지만 학문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었다”며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 길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교수로 채용될 줄은 나도 몰랐다”고 웃었다.

척추 내시경 수술은 이제 과학적 검증을 거쳐 표준화 단계에 이르렀다. 그는 이 수술을 시행한 1세대 의사로서 의료진에게 술기를 전수하는 건 물론 표준 수술법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계속 힘쓸 계획이다. 안 교수는 “이제는 내시경 수술에 국한하지 않고 최소침습 분야 전반에 두루 매진할 예정”이라며 “좀 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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