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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소득주도성장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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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 정책 실효성 논란이 더욱 가열되는 분위기다.

폐지론까지 불거지며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지만 문재인정부는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기세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 영상축사에서 “우리는 올바른 기조로 가고 있다”며 정책 고수 의지를 분명히 했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최근 쏟아진 각종 통계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고용이 좋아지며 경제 효과를 나타냈다는 청와대 해석에 대해 경제계와 학계의 반박이 빗발친다. 귀를 닫은 문재인정부의 ‘마이웨이’에 소득주도성장 정책 무용론 주장은 한층 더 목소리를 키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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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 취업자 수와 고용률, 상용근로자 증가,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 증가 등 전체적으로 보면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됐다. 성장률은 지난 정부보다 나아졌고 전반적인 가계소득이 높아졌다. 올 상반기 수출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영상축사에서 밝힌 내용이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상징되는 ‘J노믹스(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가 잘 굴러가고 있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다음 날인 26일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최근 고용·가계소득지표는 소득주도성장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역설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지표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정부 태도에 경제 전문가들은 아연실색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장하성 실장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자화자찬’은 허점투성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취업자 수가 증가해 ‘고용의 양(量)’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 정권과 비교해 좋아졌다고 말하기 힘든 형편이다. 지난해 취업자 수는 월평균 31만7000명(전년 동월 대비) 증가했으나, 올해 2월 10만명대로 주저앉았다. 7월은 단 5000명으로 줄어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폭풍이 거셌던 2010년 1월 1만명 감소 이후 8년 6개월 만에 최악이다. 청와대가 주장하는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 감소를 감안해도 월 20만명은 늘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문제에 직(職)을 걸라”며 관료들을 질책한 지 일주일이 되지 않아 “고용이 좋아졌다”며 태도를 바꿨으나 맞지 않는 분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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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자간담회에서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을 사과하고 정부 차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을 더욱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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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률(만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 비율)도 잘 들여다봐야 한다. 고용률은 계절적 지표다. 전달과 이달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1년 전과 따져야 한다는 뜻이다. 고용률을 전년 대비로 따지면 7월 0.3%포인트 낮아졌다. 올해 1월을 제외하면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낮아져 고용률이 높아졌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 분모인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고용률을 높이는 데 유리한 요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표는 더 참담한 수준이다.

상용근로자가 늘어 고용의 질(質)이 좋아졌다는 주장도 빈틈이 많다. 상용근로자 증가는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일괄 전환 정책을 펴며 공공부문 정규직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민간 고용과는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상용직 증가 폭은 연초 30만명대에서 지난 7월 20만명대로 확 줄었다. 이뿐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28일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저임금 노동자의 근로소득을 높여주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올해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최저임금 인상 성과를 언급했다.

통계청 ‘2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 소득은 한 해 전보다 7.6%(전국 2인 이상·명목 기준) 감소했다. ‘근로자 가구’로 폭을 좁히면, 1분위 근로소득(160만원)이 7.9% 증가하고 전체 소득(1999만원)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 증가했다. 청와대가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근로자 소득 증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해석하는 것은 바로 ‘근로자 가구’ 지표를 본 것이다.

그러나 고용분배지표는 나빠졌다. 근로자 가구 근로소득 증대에도 불구하고, 전체 1분위 가구 근로소득은 2분기 기준으로 한 해 전보다 15.9% 줄었다. 근로소득이 거의 없는 근로자 외 가구 비중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이는 임시직이나 일용직 등 저임금 일자리 감소에 따른 실직, 70살 이상 고령 가구의 비중 증가가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J노믹스를 이끌어가는 장하성 실장의 현실 경제 인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역시 거세다. 소득주도성장이 고용 악화와 소득 양극화를 불렀는데도, 이를 근거로 ‘소득주도성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애널리스트가 ‘매수’를 외친 종목이 급락했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주가가 떨어져 저평가됐으니 다시 주식을 사라’고 주장하는 꼴”이라며 “말하고 싶은 것만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고 비유했다.

소득주도성장이 내수를 키울 것이라는 장 실장 시각에 대해서도 의문부호를 붙인다. 장 실장은 “그동안 기업 투자만이 성장을 견인한다는 생각에서 경제성장의 중요한 축인 국내 수요, 즉 소비의 중요성을 간과해왔다”며 내수 진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기업과 수출기업 중심 성장 정책이 효용을 다했다”는 시각을 보였다.

재계는 내수 진작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수출기업을 무시하는 태도에 불만의 목소리를 낸다. 실제 지난해 내수 경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한국 경제를 떠받쳐준 것은 반도체 중심 수출이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경제 전문가는 거의 없다.

한 중견기업 CEO는 “정부는 대기업 중심 수출 주도 전략 대신 소득을 높여 내수를 키우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한국 경제가 과연 내수로 버틸 수 있는 경제인지, 내수가 일자리를 제대로 창출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며 “반(反)기업 정서를 유발하고 현실 경제를 외면한 채 이상적인 구호만 외치는 청와대가 한국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인사는 “정부는 ‘믿고 기다려달라’지만 방향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정책을 먼 미래를 보고 어떻게 기다리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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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의 질타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을 이어갈 뜻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기초연금, 장애연금 인상, 아동수당 지급, 근로장려금 대폭 인상, 기초수당 강화, 자영업자 지원 확대, 생활 SOC 등 정책을 내년도 예산에 대폭 반영했다”며 “이런 정책 보완이 실현돼 근로자와 근로자 외 가구의 소득이 함께 높아질 때 비로소 소득주도성장의 기반이 마련된다”고 밝혔다.

또 “소득주도성장·혁신 성장·공정경제는 함께 추진돼야 하는 종합세트”라며 “혁신 성장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것이고, 소득주도성장은 잘사는 사람만 잘사는 게 아니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권이 소득주도성장 사수에 나선 것은 지지층을 의식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득주도성장이 틀렸다고 하면 야권으로부터 엄청난 비판에 시달리고 지지층으로부터 정체성이 뭐냐며 외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마이웨이’에 대한 반발은 이어질 듯 보인다. 소상공인생존권운동연대는 지난 8월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최저임금제도 개선 촉구대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 소상공인연합회, 소공인총연합회를 포함해 60여개 업종 단체, 87개 지역단체 등 3만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월급을 주는 직접 당사자인 소상공인 절규를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안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통계청장 경질 사태를 두고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을 듯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인사가 최근 가계동향조사를 놓고 일었던 표본 논란에 따른 ‘징계 인사’로 본다. 통계청은 올해 소득 조사 표본을 기존 5500가구에서 8000가구로 확대했다. 표본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소득이 낮은 가구가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돼 결과적으로 지표 악화로 이어졌다는 게 여권 해석이다. 황수경 전 청장이 경질된 배경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가계소득 통계 집계 방식을 지금처럼 바꾼 유경준 전 통계청장(현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계소득 현황과 인구 변화를 정확히 반영하자는 취지에서 집계 방식을 바꿨다”며 “바뀐 통계 표본에 오류가 있어 분배지표가 왜곡됐다는 주장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분기별 지표는 추세적으로 봤을 때 정확도가 떨어져 참고자료로만 하기로 했는데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분기 분배지표가 좋게 나오자 돌연 공개한 것이라고 했다.

[특별취재팀 = 명순영(팀장)·박수호·강승태·김기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74호 (2018.09.05~09.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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