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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맛'…"미투 이후에도 성차별 여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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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일상 속 성차별 언어표현 개선위한 3차 집담회'

20~30대 청년들 학교·직장 경험 쏟아내

"음성적으로 혐오 문화 만연…건전한 공론화 장 필요"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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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안혜신 기자] “‘여자가 따르면 술이 더 맛있을 것 같다’라는 말이나 은근히 어깨를 감싸는 스킨쉽 등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어요. 미투운동 이후로 겉으로는 조심하는 분위기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아 이런 말 하면 큰일나지’라고 비꼬는 식의 표현은 더 늘었어요.”

지난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는 ‘일상 속 성차별 언어표현 개선을 위한 3차 집담회’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대학생, 직장인 등 20~30대 남성 3명과 여성 4명이 모여 일상 속에 만연한 성차별 언어의 실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미투 운동 이후로 오히려 음성적으로 변한 성차별 언어, 군대에서의 여성비하적 표현, 직장에서 겪게되는 차별 등에 대해 심도깊게 논의했다.

◇인터넷 익명성 숨어 여성비하…군대 내 여혐문화 만연

“미투 이후 오프라인에서는 조심하는 분위기지만 인터넷 익명 게시판 등에서는 여전히 ‘여혐(여성혐오)’ 표현이 넘쳐나고 있어요. 미성년자와 교제한다는 글에 ‘산삼보다 좋다는 고삼’이라는 성희롱적 댓글이 달리기도 합니다. 댓글로 이런 단어를 쓰지 말라고 지적해도 오히려 일부 남성들은 부끄러움보다는 통쾌함이나 영웅심리를 느끼는 것 같아요.”(취업준비생 A씨)

“대학생들이 시간표 등을 보는 익명 사이트인 ‘에브리타임’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안에 학생들이 게시판을 만들고 글을 쓸 수가 있어요. 굉장히 활발한 사이트인데 가장 뜨거운 주제가 성별관련 주제입니다. 댓글로 의견을 나누다 보면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돼요. 저 같은 경우는 ‘총 쏘고 싶다’는 얘기는 물론이고 ‘계집년’, ‘보전깨(보X에 전구 넣어서 깨버리고 싶다)’라는 말을 빈번하게 들었어요.”(대학생 B씨)

남성들은 특히 군대에서 적나라한 여성 비하적인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된다고 지적했다. 남성들만 있는 조직이다보니 이에 동조하지 않으면 적응하기 어렵다는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여성을 과일로 대상화해서 ‘따먹는다’는 말은 군대에서 자주 사용해요. 조직문화에 같이 있다보니 그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혼자 이상한 사람 취급 받아요. 군대 안에는 여성이 없다보니 더욱 자정작용이 힘들죠. 다들 쓰는 단어에 대해서 ‘이런 말 쓰면 안되는거 아냐?’라고 말하기 어려운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어요.”(직장인 C씨)

“저는 온라인 게임커뮤니티를 자주 이용하는데 주로 30~40대 연령대 남성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입니다. 여기서는 비하적인 표현은 하지 않지만 ‘서양 여자와 비교할 때 한국 여자는 별로다’라는 식의 편견섞인 글이 자주 올라옵니다.”(대학생 D씨)

◇미투로 성차별 음성화…“보이지 않는 차별 여전”

참석자들은 미투 운동 이후 사회적 분위기가 변했다는 점에 동의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한 성차별이나 성폭력적인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만 해도 ‘술자리엔 여자가 있어야지’라고 대놓고 말하는 상사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확실히 조심하긴 합니다. 문제는 이제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대신 남자들끼리 모여서 숨어서 한다는 것이죠. 기본적인 인식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혹시나 문제가 발생할까봐 일단 피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된 것 같아요.”(취업준비생 E씨)

“직장에서 적나라한 비하적인 표현을 쓰지는 않지만 여성에 대한 평가가 너무 지나쳐요. 특히 여직원 옷차림에 관심이 너무 많아요. 외적인 부분의 변화를 알아줘도 전혀 고맙지 않습니다. ‘내가 조심해서 널 대해주고 있는거야’라는 발언이 오히려 직장에서는 여성에게 차별로 다가올 때가 있어요.”(직장인 F씨)

“미투 이후로 조심한다고 하는데 저는 최근에도 술 자리에서 ‘술 같이 먹어도 문제 안생길 것 같은 여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겉으로라도 달라졌다고 얘기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이러면 큰일나’ 라든가 ‘지금 이러면 안되지’라는 식의 비꼬는 표현을 오히려 더 많이 듣게 된 것 같아요.”(대학원생 G씨)

◇남녀 토론의 장·관련 교육 강화 등 개선 필요

참가한 20~30대 청년들은 이러한 일상 속 만연한 성차별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내놨다. 여성과 남성의 다름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공식적인 토론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부터 대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필수적으로 진행해야한다는 의견 등이 나왔다.

대학생 D씨는 “남성과 여성이 대화할 수 있는 장이 별로 없다보니 관련 주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특히 10대 남성의 경우 아직 남성우월주의 사회에 대해서 피부로 느끼지 못해서 반발심을 갖게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이해시킬 수 있는 열린 토론 기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참석자들은 특히 자율에 맡기다보니 부족할 수밖에 없는 대학 내 성별 관련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원생 G씨는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교과서상 성차별 표현 많으니 교과서 검수가 필요하고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할 것 같다”면서 “특히 대학 내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나 졸업 필수요건 등으로 성차별 관련 수업을 넣는 방법으로 동기 부여를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담회를 주재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최근 성별 갈등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다양한 연령대와의 집담회를 통해 성차별적인 언어나 표현이 어떻게 내면화되고 있는지 작업하고 있다”면서 “직접 현장과 간담회에서 보니 장관실에서 정책 결정할 때와는 다른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이를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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