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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고용위기가 낳은 촛불정부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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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 논의가 경제민주화 압도

당·정·청 ‘경제 우클릭’

법안 처리 키 쥔 한국당, 협치 명분·실리 모두 챙겨

정치권의 규제개혁 논의가 속도를 내는 반면, 경제민주화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고용위기에 따른 정부·여당의 혁신성장 강조 기조,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간 청와대 회동을 계기로 본격화한 협치 무드가 맞물리면서 규제개혁 관련 법안은 일사천리로 처리될 기세다. 반면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 ‘촛불 정부’인 문재인 정부에서 규제개혁 논의가 경제민주화 논의를 압도하는 역설적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여야는 최근 며칠 새 규제완화 보따리를 대거 풀었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조찬회동에서 규제프리존법, 지역특구법, 지역특화발전특구법을 병합해 30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여야 3당 원내대표는 또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산업융합촉진법, 정보통신융합법 등 ‘규제 샌드박스 5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해당 상임위 논의를 거쳐 이달 중 처리하기로 했다. 앞서 이들은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8월 국회에서 처리키로 약속한 터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인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논의는 답보 상태다.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상가임대차보호법을 8월 중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계약갱신요구권 기한, 보증금·월세 인상률 제한 여부 등을 놓고 민주당과 한국당의 입장차가 큰 상태다. 통신비 경감을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소비자 권리 보호에 필요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와 집단소송법 개정 건은 아예 여야 협상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특히 6·13 지방선거 이후 본격화한 청와대·정부·여당의 ‘경제 우클릭’이 현 상황의 원인으로 꼽힌다. 고용·경제지표 악화 등 당면한 위기의 탈출구로 ‘규제완화’를 택한 것이다. 법안 처리의 키를 쥔 한국당이 요지부동인 상황이어서 협치는 규제완화 등 한국당 주장을 여권이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모양새가 되어가는 양상이다.

그러다 보니 규제개혁 논의가 경제민주화 논의를 압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민주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개혁입법연대’가 사그라들고 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의 ‘규제개혁연대’가 부각됐다는 말도 있다.

규제완화가 주된 기조인 한국당 입장에선 정부·여당의 태도 변화를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승적으로 협치에 나섰다는 정치적 명분, 평소 지론인 규제완화 요구를 관철했다는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다. 경제정책을 둘러싼 대치선 자체를 오른쪽으로 끌어당겨 소득주도성장이나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논의를 봉쇄하는 효과도 기대해봄직하다.

여야 3당 원내대표의 합의 사항으로 볼 때 8월 국회의 쟁점은 경제민주화 법안의 처리 여부가 아니라 규제완화의 폭과 속도를 둘러싸고 형성될 공산이 크다. 한국당에 유리한 운동장(의제)에서 협상이 이뤄지는 셈이다. 한국당이 꿈쩍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협치라는 것은 결국 한국당이 주도하는 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당 김용태 사무총장은 19일 “소득주도성장론의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 장하성 정책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내 측근그룹을 인사조치하시라”며 소득주도성장론의 폐기는 물론 인적청산까지 촉구했다.

<정제혁·정환보 기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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