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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단독] "뽑을 이유도 자리도 없는데"…기업들, 향후 불이익 우려 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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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 불법취업 사건 공소사실에 따르면 불법취업을 강요받은 대기업 중 대부분이 공정위 '고참·고령' 퇴직자들을 취업시킬 필요나 이유가 없었다.

통상 대기업은 부당공동행위(카르텔), 기업 결합, 하도급 등 공정위 현안이 생기면 김앤장, 율촌, 태평양 등 전문 법률지식에 기반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 로펌을 선임해 이를 해결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공정위 사건은 지식재산권이나 금융 등 다른 전문 영역에 대한 법률 경험과 역량, 네트워크까지 필요하기 때문에 대형 로펌을 선임하지 않고는 해결하는 게 어렵다. 또 재판을 끝까지 마무리하려면 5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기업의 공정위 현안은 위원장 출신 전관을 영입해 활용한다고 해도 그가 비공식적으로 로비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업계와 로펌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나 공정위는 기업들의 이러한 사정이나 공정위 현안의 특수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업들에 퇴직자들의 불법취업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그룹의 피해가 대표적이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2012년 12월 당시 공정위 고위 관계자들은 롯데그룹 정책본부 관계자를 공정위로 불러내 "이번에 공정위 퇴직자가 있는데 롯데그룹에서 채용해달라" "다른 대기업에도 공정위 출신 직원들이 다 근무하고 있고, 삼성 같은 경우에는 여러 명이 근무하고 있으니 롯데에서도 받아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롯데는 공정위가 채용을 요구한 당사자를 채용해도 마땅히 활용할 방법이 없고 '고문'으로 채용해 거액의 연봉을 부담할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룹을 상대로 어떠한 불이익을 가할지 모른다는 점을 우려해 채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 현대백화점의 유통 담당 중간간부도 공정위 관계자에게서 "우리 퇴직자를 채용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내부 검토 뒤 "전례가 없어 어렵다"는 취지로 답변했지만 소용없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장급 인사에게 연락해 채용을 다시 요구했다. 결국 이후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을 우려해 1억원이 훨씬 넘는 연봉 등을 지급하는 조건에 고문으로 채용했다.

2014년 3월에 한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신세계그룹 부사장급 인사를 불러내 "이번에 퇴직하는 직원이 있는데 신세계에서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신세계그룹은 2013년 8월 신설돼 취업 압박을 받을 당시까지 취업 제한 사기업체로 지정되지 않았던 신생 계열사에 문제의 공정위 퇴직자를 채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억대 연봉에 매달 상당액의 법인카드까지 제공하기로 하고 고문으로 채용했다고 한다.

[송광섭 기자 /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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