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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단독] "1년차 1억9천, 2년차 2억9천 달라"…공정위의 치밀한 취업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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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대기업 압박해 퇴직간부 17명 불법 취업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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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2억6000만원, 차량 제공, 차량 유지비 지원, 자가운전 보조비, 매달 400만원씩 사용할 수 있는 법인카드."

2016년 6월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구속기소) 등이 국내 대기업을 압박해 1년 뒤 고문으로 취업시킨 한 공정위 퇴직 간부의 연봉과 취업 조건이다. 이번 수사로 확인된 퇴직 간부 가운데 가장 높은 연봉을 받았지만 실제로 제공받은 이득은 연간 3억6000만원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수사 결과 공정위 고위 관계자들이 2011년부터 16개 대기업을 압박해 퇴직자 17명 취업을 성사시켰다. 17명 가운데 연봉 1억원 미만은 1명뿐이었다.

"사무실 없지만 출근도 안해"

매우 독특한 연봉 계약을 한 사례도 있었다. 한 퇴직 간부는 '1년 차 연봉 1억9000만원, 2년 차 연봉 2억9000만원, 3년 차 연봉 2억4000만원, 월 업무추진비 500만원'이라는 취업 조건을 보장받았다. 국내 대표 IT 대기업에 재취업한 퇴직자는 연봉 1억2000만원 외에 성과급 4000만원과 차량, 차량 보조비(월 75만원), 건강검진, 의료비, 법인카드까지 다양한 복지 혜택 등 가장 두드러지는 조건을 누렸다.

한 유통 대기업과 대기업 IT 계열사 2곳에 입사한 퇴직자 3명은 1억원이 훨씬 넘는 연봉에 각각 골프회원권과 차량 유지비 외에 월 50만~350만원 사용할 수 있는 법인카드를 제공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기업 연구소와 유통 대기업에 고문·자문으로 재취업한 공정위 전관 4명은 업무를 볼 사무실을 제공받지 못했지만 '출근도 할 필요가 없는 취업 조건'을 보장받았다. 이들은 최대 2억원에 이르는 연봉을 보장받았다.

법인카드는 17명 가운데 10명이 사용했고 최대 한도 금액은 매달 500만원이었다. 법인카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활동비(매달 300만원) 업무추진비(매달 500만원) 등 연봉 외에 별도 현금을 따로 지급받은 것으로 보이는 사례도 있었다.

이런 대우 합당할까

재취업한 공정위 퇴직자들이 모두 공정위에서 요직을 거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처럼 높은 연봉과 복지, 근무 여건을 보장받는 것이 합당한지는 알 수 없다. 판촉비, 활동비, 활동지원금 등 명목이 분명하지 않은 지원도 있었다. 검찰은 취업된 당사자들을 아무도 입건하지 않고 참고인으로만 조사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지난 16일 "대부분 퇴직자는 공정위 의견을 바탕으로 인사혁신처의 취업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또 "공정위는 2011년 이후 인사혁신처가 의견을 요청한 공정위 퇴직자 90%에 대해 인위적인 경력 관리를 거친 후 업무 관련성을 부정하는 등 취업 심사 승인 의견과 자료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재취업 대상자들 연봉과 근무 여건, 복지 등 구체적인 취업 조건이 공정위에서 요구한 대로 관철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검찰은 수사가 길어지고 수사 대상이 늘어나면 공정위 업무에 지장이 생길 수 있고 이미 반발도 커질 대로 커진 상태라 수사 기간과 대상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적 불법취업 계획 관철

공정위 불법취업은 2009년 11월 '바람직한 퇴직문화 조성을 위한 퇴직관리 방안 검토'라는 보고서를 작성한 뒤 진행됐다. 이 보고서는 △조직 노쇠화 △인사 적체 △승진인사 장애 등 고질적인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고서에는 특히 '국장급 퇴직자는 기업체 고문, 과장급 퇴직자는 기업체 임원, 무보직 서기관 이하는 기업체 부장으로 취업시킨다'는 등 세부 실행계획까지 담고 있었다. 이후 공정위는 매년 '퇴직자 취업 현황' '정년 예정 현직자 현황' '유관기관 단체 현황' 문건 등을 작성하며 퇴직이 임박한 직원들 취업 계획을 관리했다. 그러나 먼저 취업한 퇴직자들이 때맞춰 물러나지 않는 상황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공정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4년 3월 '과장급 이상 퇴직자 추천 기준' 문건을 다시 작성했고 이를 토대로 퇴직자 취업 자리를 20여 개까지 늘렸다. 이 자리는 대물림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종원 기자 / 송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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